현대조선소 전경.
1971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울산 미포만 사진 한장과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도 하나 들고 유럽을 돌았다. 이곳에 조선소를 건설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였다. 같은 해 9월 고 정 명예회장은 영국 바클레이 은행의 롱바톰 회장을 만나, 당시 통용되던 우리나라 돈 500원 지폐를 꺼내 거북선 그림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어 외적을 물리쳤소. 비록 쇄국정책으로 시기가 좀 늦어졌지만 그 잠재력만큼은 충분하다고 생각하오”라고 말해, 결국 돈을 빌리는데 성공했다.
고 정 명예회장이 조선소를 건립한 지 20여년이 채 안돼 우리나라는 세계 1위의 조선 대국으로 올라섰다. 현대중공업 역시 세계 1위 조선기업으로 받돋움했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 중국의 값싼 배들이 나오고 세계 시황 불안정으로 국내 조선업은 후퇴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정부의 구조조정 대상 첫번째 산업으로 지목됐다.
내수 효자 산업으로 매년 수출 상위 5위권 안에 들던 조선업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셈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에 대한 서너개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채권단 소유인 대우조선해양을 삼성중공업이나 현대중공업과 합병해 조선업을 양강 체제로 개편을 추진한다. 조선업을 양강 체제로 만들어 중국, 일본 등과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도록 하겠다는 복안이지만, 적자 기업인 대우조선을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매입할 여력이 없어 설득력이 없는 조정안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도 살림이 어려운데 적자 기업을 떠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보다는 정부가 빅3 체제를 유지하되, 이들 업체의 불필요한 자산과 계열사 매각, 인력 감축 등을 통한 구조조정안이 더 탄력을 받고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금융회사, 호텔 등 계열사만 20여개가 넘고,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도 마찬가지다. 대우조선의 경우 채권단 주도로 본사 조직과 인원을 30%가량 줄였으며, 골프장을 포함해 비핵심 자산도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보유하고 있는 타사 주식 매각 등을 통해 총알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의 세번째 카드는 이들 빅3가 중복되는 과잉, 중복 사업 부문을 한 업체에 몰아주거나 별도 회사를 차리는 방안이다.
빅3가 모두 하는 해양플랜트나 방위사업을 떼어 별도 회사를 차리고 빅3는 조선업만 집중하는 것도 대안이다. 현재 대우조선에서 수익을 내는 방위산업을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에 몰아주는 방법도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조선 빅3의 자구 노력이 미흡해 정부가 강력한 칼날을 들이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빅3가 살아남으려면 정부가 수긍할 정도의 추가적인 조직 개편과 인원 감축, 자산 매각 등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수남 기자 perec@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