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6월까지 서비스 단계적 확대
이번에 시행되는 계좌이동제는 지난 7월에 실시된 1단계에 이은 2단계 조치다. 7월 1일 오픈한 페이인포(www.pay info.or.kr)에선 은행 등 금융회사에 등록된 자동납부 목록 조회와 해지 서비스만 제공했다. 10월 30일부터는 통신·보험·카드 등 전체 자동이체 건수의 67%에 해당하는 3개 주요 업종 자동납부를 대상으로 출금계좌 변경이 가능하다.
시행 첫날인 지난달 30일 17시 기준 페이인포 접속건수는 18만 3570건이었으며 자동이체 계좌 변경이 2만 3047건, 자동이체 해지신청이 5만 6701건이었다.
내년 2월부터는 온라인뿐 아니라 전국 은행지점 창구에서 직접 자동납부뿐 아니라 자동송금까지 할 수 있다. 새롭게 주거래은행으로 이용하려는 은행 지점을 찾아가 계좌를 개설하면서 타행 계좌의 자동이체를 끌어올 수 있는 것이다. 내년 6월부터는 각종 공과금과 신문구독료, 학원비 등 모든 자동이체 납부 변경이 가능하다. 금융당국은 시스템 안정화 추이를 보면서 서비스 수준과 참여 금융회사 범위 등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 은행 수익성 악화 요인 지적
내년부터 계좌이동제가 지점 창구에서도 본격 시행될 경우 은행 간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다수다.
임형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계좌이동제 시행이 내년 국내은행들의 수익성 악화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 전망했다. 고객 선택권 확대로 예금잔액 변동성이 커지면서 특히 요구불예금 규모가 작은 은행의 추가 유동성 비용 가능성이 높아지고 마케팅 비용 부담도 가중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앞서 계좌이동제를 도입한 영국은 대형은행들이 계좌이동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바클레이즈의 경우 지난해 8만좌 이상의 고객을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중소형 은행인 산탄데르, 할리팍스는 고금리와 캐시백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지난해 전체 계좌이동 약 110만건 중 30% 정도를 차지하는 등 시장점유율을 확대했다.
◇ “은행 간 금리경쟁 경계해야”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처리된 자동이체 건수는 총 26억 1000만건, 금액은 799조 8000억원에 달했다. 1인당 월평균 이체건수는 8건, 건당 평균 이체금액은 31만원 수준이다. 계좌이동제 대상이 되는 개인 수시입출금식 계좌수는 약 2억개로 예금 잔액은 242조 8000억이고 월평균 예금잔액이 30만원 이상인 활동성 계좌수는 5500만개(28%) 정도로 추정된다.
올해 들어 각 은행마다 ‘집토끼’를 잡기 위한 주거래고객 패키지 상품을 잇달아 내놓으며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급여이체, 신용카드 이용실적 등에 따라 우대금리는 물론 수수료 무제한 면제 등 고객 유치를 위한 미끼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권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우려의 시선도 제기되고 있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규고객 확보 및 기존고객 유치를 위한 당장의 손쉬운 경쟁수단은 수신금리 인상”이라며 “은행들의 지나친 금리경쟁은 조달비용의 급격한 증가로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해외사례를 보면 외국계나 소형은행들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신규고객을 유치하는데 기존 은행들은 보수적인 방어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800조원 머니무브는 과장
계좌이동제 시행으로 금융소비자들의 선택권이 확대되는 이점도 있지만 반대로 예상치 못한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는 만큼 주의해야한다. 기존계좌의 자동이체가 금리나 수수료 우대조건일 경우 계좌이동 시 대출금리 상승이나 예·적금 금리인하, 면제받던 수수료 부과 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여론조사 기관인 NICE알앤씨 조사에 따르면 계좌이동제와 관련해 금융소비자들은 계좌이동 후 기존 주거래은행에서 받던 혜택 소멸을 가장 우려했다. 이러한 인식은 특히 금융자산 1억원 이상이거나 주거래은행 변경 의향이 없는 소비자에게서 더 높게 나타났다.
때문에 다수 미디어들이 추정하는 800조원 시장에 대해선 다소 과장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해 발생한 자동이체 금액이 약 800조원이긴 하지만 전체 개인 수시입출금식 계좌 2억개의 잔액은 242조 8000억원으로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또한 영국에서 1년간 계좌를 이동한 비중이 전체 계좌의 3%였는데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계좌이동제가 은행산업의 판을 뒤흔드는 역할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의 편익을 높이고 경쟁을 촉진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김효원 기자 hyowon123@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