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금융당국, 경찰청과 금융사 실무진 50여명이 참여한 ‘대포통장 근절 현장전문가 집중 토론회’를 15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실질적이고 종합적인 대포통장 근절 대책 모색을 위해 현장전문가들을 초청한 만큼 실제 경험에서 우러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 장기 미사용 계좌 거래 제한 강화
김갑수 우리은행 서민금융팀장은 대포통장 근절을 위한 대책에 전은행이 동참할 것을 주문했다. 우리은행을 비롯해 국민·신한·하나은행은 지난 6일부터 과거 1년간 자동화기기에서 입출금 및 이체 내역이 없는 장기 미사용 계좌 인출한도를 현행 600만원에서 70만원으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김 팀장은 “고객들이 70만원 이상 인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일부 은행만 시행하기엔 한계가 있으니 모든 은행이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권의 예금계좌 절차가 강화되면서 기존에 정상 발급된 통장이 불법매매 등을 통해 대포통장으로 유통·활용되는 사례가 증가해 금감원 역시 장기 미사용 계좌의 비대면 거래제한 확대 방안 등을 추진 중이다. 예금계좌 해지절차를 간소화해 장기 미사용 계좌 정리도 유도할 계획이다.
지난 2월부터 대포통장 근절 종합대책을 시행 중인 우리은행은 장기 미사용 계좌 인출한도 축소 외에도 300만원 이상 입금 시 인출 가능 시간을 기존 10분에서 5월 11일부터 30분으로 연장할 계획이다. 추후엔 1시간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 밝혔다.
2014년 7월부터 지난 2월까지 우리은행 ATM 300만원 이상 입금 거래 중 35%가 1시간 안에 인출됐다. 공휴일과 영업외 시간을 제외하고 영업시간만 살펴보면 68%에 달했던 만큼 1시간까지 연장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 팀장은 “국내에선 통장 발급이 쉬웠던 만큼 고객들의 불편 호소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통장개설 절차 강화 등 대포통장 근절 대책에 따른 소비자들의 불편과 금융안전 추진 사이에서의 균형은 금융사들의 어려운 과제로 남게 됐다.
◇ 강력한 처벌로 ‘범죄’ 인식 심어야
이기동 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통장 양도가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인식 전환이 시급함을 촉구했다. 이 소장은 “대포통장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억울한 경우가 많긴 하지만 강력하게 처벌해 이것이 범죄라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7년부터 2년간 중국 보이스피싱의 대한민국 총책을 맡았다가 징역형을 받은 이력이 있는 이 소장은 “범죄의 수법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이를 쫓기 보다는 대포통장을 없애는 것이 사기를 근절하는 방법”이라 말했다. “범죄자들이 돈을 인출할 수 있는 도구인 대포통장이 없다면 범죄를 저지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신규통장에 한해선 1일 출금한도를 100만원으로 낮출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범죄자들이 대포통장을 구입해도 남는 것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금감원은 ‘금융사기 근절을 위한 범 금융권 홍보 TF’를 구성하고 금융권 공동의 금융사기 예방을 위한 상시 홍보체계를 구축하고 최초 홍보주제로 ‘대포통장 근절’을 선정하기로 했다. 공익광고 등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펼치는 한편 노령층 등 정보취약계층의 경우 사회복지사나 도인돌보미 등을 통해 면담 방식으로 집중 홍보를 실시할 계획이다.
◇ 금융사 직원교육 강화가 핵심
송재철 농협중앙회 전화사기대응팀 차장은 대포통장 근절을 위한 금융사 직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금융사 마다 대포통장 대응을 위한 가이드라인 등이 마련되어 있긴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창구 직원의 재량적인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직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협은 농협은행과 농협중앙회의 지역 단위농협까지 점포수만 4580여개에 달해 대포통장 개설의 주요 표적이었다. 2012년 기준 농협은행과 단위농협이 전체 대포통장의 74.6%를 차지했다. 이후 대대적인 대포통장 근절 노력을 펼친 결과 지난 2월엔 비중을 2% 수준으로 낮추는 뚝심을 발휘했다.
송 차장은 3만여명에 달하는 직원들의 노력과 이들에 대한 교육 강화를 대포통장 근절에 성공한 원인으로 꼽았다. 상호금융대상 업적평가에도 대포통장 발생건수를 반영했다. 또한 그는 출국일이 얼마 남지 않은 외국인 등 대포통장의 사각지대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엔 경찰청 실무진도 참여한 만큼 보이스피싱 사기나 대포통장과 관련한 경찰과 금융사 간의 소통과 공조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됐다.
한편 금감원은 지난 8일 ‘민생침해 5대 금융악’으로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불법 사금융 △불법 채권추심 △꺾기 등 금융회사의 우월적 지위 남용행위 △보험사기를 설정하고 이달 중 분야별 세부대책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효원 기자 hyowon123@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