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손보 영역분쟁 (下)] 잠복한 갈등 “언제든 터질 수 있어”](https://cfn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30519205436124471fnimage_01.jpg&nmt=18)
생보업계는 손보사들이 인(人)보험 보단 일반·재물보험 등 본연의 시장에 집중해야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손보업계 역시 물(物)보험의 비중을 늘려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일각에서는 비중을 눈에 띄게 늘리고 있다. 그러나 물보험은 인보험보다 어렵고 니즈가 별로 없어 판매하기가 쉽지 않다. 비록 지금은 생·손보 영역갈등 문제가 수면 아래로 잠복해 있지만 언제든 불씨만 붙으면 터질 수 있는 상황이다.
◇ 언제든 터질 수 있는 불씨
얼마 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설 때 손보업계는 △저축성보험 기간제한 폐지 △세제비적격 연금 취급 △질병사망 한도 상향 등의 내용을 담은 건의서를 인수위에 전달하고자 애쓰다가 결국 전달하지 못했다.
건의안에는 저축성보험 기간제한의 경우 20여년 전에 만든 규정을 지금까지 적용하는 것은 시대에 뒤처진 행정이라고 주장이 포함돼 있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노후준비가 시급한 상황임에도 불구, 이같은 규제에 발목이 잡혀있다는 것. 세제비적격 연금을 팔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를 들었다.
또 상해·질병 등을 보장하는 제3보험의 질병사망 보장금액을 인당 2억원으로 제한한 것 역시 물가와 소득상승률을 감안할 때 현실적이지 않다며 상향을 요구했다. 생보처럼 보험금액 및 기간에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제3보험은 생보사와 겹치는 부분인데 금액제한으로 인해 생보에 뒤처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 이처럼 지금은 생·손보 영역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수면 아래로 내려갔으나 정권교체 및 제도개선 이슈가 나올 때마다 시한폭탄처럼 터져 나올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손보업계도 할 말은 있다. 2008년 실손의료보험 시장에 생보사들이 들어오면서 시장을 내주자 세제비적격 연금상품 취급을 금융당국에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이후 2010년 보험기간 규제 철폐를, 2011년엔 다시 세제비적격을 요청했으나 모두 거부됐다. 당시 손보업계의 상실감은 상당히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손보사 관계자는 “실손보험이 장기보장성보험 영업의 중심에 있었는데 이 시장을 뺏겼다는 의식이 강했다”며 “통합보험도 손보에서 시작했지만 생보사들도 대거 참여하면서 시장을 개방한 형국이 됐다”고 말했다.
◇ 통합보험 등장, 장기보험의 득세
손보업계에서 장기보장성보험이 대중화된 계기는 통합보험의 등장이다. 모든 위험을 하나의 증권으로 3대가 보장받을 수 있는 이 상품은 출시와 함께 단숨에 시장을 장악했다.
지난 2003년 12월 시판된 삼성화재 ‘수퍼보험’을 시작으로 대형사들은 물론 중소형사까지 비슷한 상품을 선보이면서 급속도로 커져 통합보험은 장기보험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이로 인해 손보사들은 외형을 키우고 설계사의 소득과 정착률을 높이는 효과를 얻었다. 당시는 온라인 자동차보험의 등장으로 위기감을 느끼던 대면설계사들에게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가입자들 역시 통합보험이 일반화되면서 손보사가 3년 이상의 장기보험을 판매한다는 점을 많이 인식하게 됐다.
반면에 생보업계에선 손보사의 통합보험을 종신·변액보험의 대항마로 여기는 시각이 많았다. 당시 생보사들은 보험료 중량이 큰 종신보험에 주력했고 비슷한 시기였던 2003년 7월 메트라이프생명이 변액보험을 출시하면서 새로운 동력을 얻던 시기였다. 이후엔 생보사들도 뒤늦게 통합보험을 출시하면서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2008년 9월 삼성생명이 통합보험을 출시한 뒤 대형사, 중소형사 할 것 없이 통합보험을 선보였다. 생·손보는 통합보험을 계기로 본격적인 상호침투가 시작된 셈이다.
◇ 달라진 손보사의 리스크 구조
장기보험이 손보시장의 주류가 되면서 가장 달라진 점 가운데 하나가 손보사의 리스크 구조다. 전통적으로 손보사는 재해 등으로 큰 손실이 생겼을 때 발생하는 보험리스크가 주요 리스크였는데 이율을 적용하는 장기보험이 늘면서 금리리스크도 보험리스크 만큼 높아졌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현재 손보사의 리스크 구조는 보험과 금리가 반반 정도로 안정된 수준”이라며 “장기보험 증대로 손보사는 리스크 관리가 한층 수월해진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장기보험이 지금 같은 속도로 늘어 균형이 깨지면 위험이 커지는데 RBC의 요구자본은 계속 늘지만 가용자본이 될 잉여금이 리스크 증가속도 만큼 나올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즉, 고령화 가속과 장기간 보장 및 저축을 하면서 리스크 양은 높아지는데 장기보험이 이를 받쳐줄 수익성을 지속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 장기보험 손해율은 80% 중반에 달하며 주요 투자처인 채권의 금리도 좋지 않다.
더구나 금리리스크는 장기간 지속되는 특징이 있는데 문제가 드러날 때는 이미 치유가 불가능하다. 생보사들이 손보사의 장기보험 편중을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이유기도 하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손해보험은 사고로 인한 손실을 보상하는 게 본질인데 금리리스크에 휘둘려 정작 본연의 업무를 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며 “손보사는 인보험보다 물보험에 더 중점을 두는 게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생명보험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전형적인 인보험으로 생보와 중복되는 손보상품이 장기인보험이다. 이는 손보 보장성보험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생보업계의 속내는 손보사들이 장기인보험보다 재물보험 및 일반보험에 집중하는 것이 권역간 다툼을 최소화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 필요성 느끼지만 영업 어려워
손보업계 역시 일반보험과 재물보험의 볼륨을 키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국내시장에서 판매력이 부족한 분야라는 점이다. 2월말 기준 손보업계 장기보험 원수보험료 36조7000억원 중 재물보험은 3조4000억원이다. 장기보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FY2003(2003년 4월~2004년 3월) 16.4%에서 FY2010 6.5%로 하락했다가 FY2011 7.2%, 올해 2월 7.9%로 소폭 반등했지만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다. 일반보험 또한 전체 손보업계 원수보험료에 9~10% 정도에 불과하다.
대형손보사 관계자는 “일반보험은 일단 설계사가 얻는 실익이 적어 판매가 잘 이뤄지지는 않는다”며 “재물보험의 경우 인보험보다 어렵기도 한데다 무엇보다 니즈를 찾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원충희 기자 wch@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