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공개 석상에서 보험업계의 이차역마진 사태에 대해 '마치 절벽을 향해 달리는 기차 같다'고까지 말했다. 저성장ㆍ저금리의 장기화 추세로 보험사의 수익성이 나빠져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는 발언이다. 그렇다면 국내 보험업계 이차역마진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일까.
◇ 손해보험사 보다 생명보험사가 문제
이차역마진이 발생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자산운용수익보다 계약자에게 주기로 한 수익이 더 많을 때 발생한다. 따라서 최근 판매된 저축성보험 상품들은 대다수가 금리연동형으로 금리리스크가 없거나 미미한 수준. 가장 큰 문제는 2000년대 이전에 판매된 금리확정형 상품들이다. 손해보험사는 금리확정형의 비중이 12.5% 수준인 반면, 생명보험사는 53.6%로, 손해보험사보다는 생명보험사가 심각한 상황이다. 생명보험사들의 금리확정형 부채는 총 159조원에 달하는데, 이 중 6%대 확정이율이 10.8%(19조1000억원), 7%대가 44.2%(76조6000억원), 8%대 7.9%(14조1000억원) 등으로 총 보험료적립금 중 확정형 6%이상이 약 35%에 달한다.
◇ 금리 1%P 떨어지면 보험사 적자 발생
보험연구원 조재린 연구위원은 최근 금융위·보험연구원 워크숍에서 “금리가 1%P하락하면 보험사들의 상당수가 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보험사들이 이차역마진의 위기 상황에 대비해 전사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조 연구위원은 “과거에 판매한 확정형 고금리상품이 생보사들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지금은 자본계정 투자수익과 보험영업이익으로 금리 역마진을 보전하고 금리연동형 보험, 변액보험 등으로 상품구성을 조정해 준비금 부담금리를 낮추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해 생보사 일반계정 보험료적립금(282조원)의 적립이자는 16조원이었지만 투자수익은 14조9000억원에 그쳤다. 보험사의 주된 수익원 중의 하나인 이자율차 손익이 -1조1000억원으로 역마진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생보사들은 이차역마진을 적립금 초과 투자수익(2조원)과 보험영업이익(3조4000억원) 등으로 보전해 지난 해 세전 4조3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조 연구위원은 그러나 “저금리가 지속되면 이차역마진이 확대돼 자본계정 등을 통한 역마진 보전이 한계에 달한다”며 “금리가 현재보다 1%포인트 이상 하락해 그 수준이 지속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일부 보험사는 당기손실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시나리오 분석결과, 장기 시중금리(지난 10월22일 현재 국고채 5년 물 2.92%)가 100bp 하락하면 국내 보험사의 당기순익 감소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금리가 100bp 이하로 지속적으로 내려갈 경우에는 국내 생보사들이 2015년부터 당기손실을 기록해 적자 경영 위기에 봉착할 것으로 조사됐다.
◇ 금리리스크, 대형3사가 심각하다
국내 생명보험사 가운데 보험 적립금 내 고정금리형 비중이 가장 큰 곳은 올 상반기 기준으로 한화생명(65.2%), 교보생명(64.5%, FY2011 RBC기준), 삼성생명(55.2%) 등 대형 3사다. 이들 보험사는 고정금리형 적립금 대부분이 6% 이상의 금리를 보장하고 있고, 적립금 평균 부담이율도 6%안팎이다. 4%대를 간신히 넘기고 있는 운용자산이익률을 감안하면 1.5%갸랑의 역마진이 발생하는 꼴이다. 반면 외국사와 중소사는 5%안팎의 평균부담이율을 기록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금리리스크가 적은 편이다.
대형 생보사 자산운용부문 관계자는 “10년간 지속적으로 부담이율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와, 평균부담이율을 많이 줄였지만, 아직 역마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저금리의 장기화 추세가 더해져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일본·미국 전례 참고해야
밀리만컨설팅 안치홍 한국대표는 1980년대 후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저금리가 장기화되고 1997년부터 2001년까지 7개 생명보험회사가 파산한 일본의 예를 들었다. 안 대표는 “버블 붕괴기 급작스러운 자산 부실에 따른 일시적 부담과 이후 저금리기의 보험상품의 마진 감소에 의해 장기적인 부담이 발생한다”며, “일본은 6% 이상의 고금리가 형성된 시기가 거의 없었으며 순보험료식 준비금을 적립했기 때문에 고금리에 대한 부담이 적어 버블의 붕괴로 인한 자산 부실이 파산의 주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안 대표에 따르면, 일본 보험회사는 저금리로 인한 이차역마진을 보험영업 마진으로 상쇄하는데 주력했는데, 판매채널의 효율화로 사업비를 절감하였으며, 보증이율의 인하와 보험료 인상, 가격경쟁 완화, 보장성 보험 판매 확대 등 상품혁신으로 이차역마진을 극복했다.
미국도 1980년대 후반부터 저금리가 장기화되자 이차역마진으로 1991년 81개 보험회사가 파산했다.
안 대표는 “미국 보험회사는 정교한 자산부채종합관리(ALM)로 리스크관리에 뛰어나 상대적으로 금리리스크의 영향이 미미했다”며, “전통형 상품의 마진 축소를 변액보험 판매 활성화로 보완하면서도 변액보험의 보증리스크 감소를 위해 상품디자인 측면에서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 저금리 극복, 생존 전략은?
그렇다면 생명보험업계가 저금리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저금리 장기화는 보험사의 수익을 감소시킴은 물론 90년대 일본처럼 보험업계의 구조개편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업계가 급속한 고령화에 대응해 연금상품이나 의료보험상품의 개발과 판매에 노력하면 시장확대와 함께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과 의료보험상품 등 최근 수요가 늘어나거나 수익성이 양호한 상품을 판매해 이차역마진의 갭을 줄이라는 주문이다.
보험연구원 조재린 연구위원은 시중금리의 단기 반등 가능성이 낮으므로 보험사들이 적극적인 저금리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험상품 구성을 다양화해 보장성 상품과 금리연동형 상품 비중을 높이고 유배당 상품 판매도 활성화하는 영업 전략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자산운용 측면에서도 회사채와 해외채권 등 부채중심 투자를 유지하면서 수익성을 제고하고 금리위험 헤지를 위한 파생상품 활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조 연구위원은 또 금융당국에도 보험산업에 대한 주기적인 위기상황 분석과 충분한 준비금 적립 유도에 나서는 한편, 준비금 적립 표준이율이나 해외채권 매입 관련 규제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밀리만컨설팅 안치홍 대표도 “저금리에 가장 중요한 리스크는 상품의 수익성이 감소해 재무상태가 점진적으로 악화되는 것”이라며 “사업비 절감과 사차익 확보로 마진 하락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보험사의 금리리스크 확대를 보험소비자의 부담으로 떠넘기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의 목소리도 있었다.정지원닫기정지원기사 모아보기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은 “사업비 선취 중심으로 되어있는 상품에서 후취나 복합형 상품으로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감독원, 업계와 구성한 태스크포스에서 표준이율 인하문제를 논의하겠지만, 그 부담을 모두 소비자에게 떠넘겨서는 안된다”며 고 강조했다.
최광호 기자 h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