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런 비결은 자체 시스템 개발·운용
“제판분리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2000년대 들어서면서 국내 보험업계에 GA(General Agent)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GA들은 초창기 보험사 전속 판매조직과 달리 여러 보험사의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는 매력을 앞세워 일종의 ‘창업 붐’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전후해 수백곳의 GA들이 문을 닫은 상태. 많은 GA들이 쓰러진 이유로는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불경기와 GA업계 내부적인 문제인 구성원들의 잦은 이직 등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GA업계에서는 GA들이 매출감소 등 경영상의 위기에 견딜 수 있는 수준의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점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2002년 2월 설립된 한국GA홀딩스(회장 이치호)는 국내 GA업계의 역사 그 자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사는 GA 창립 붐과 일부 보험사들의 고능률 설계사 리크루팅 과열로 촉발된 2000년대 중반의 설계사 대란과, 2000년대 말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도 건재함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이 회사가 이처럼 롱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자체적인 교육·급여산정 시스템, 두 번째는 사원 주주형태의 지분구조다.
◇ 자체적인 교육·수수료 시스템
한국GA홀딩스는 KSPID라는 교육컨설팅 법인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대부분의 GA들이 보험사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이수하는 것과 달리 자체적인 교육과정을 두고 있는 것. 이치호 회장은 “보험사들은 자사 상품만을 가지고 재무컨설팅하는 교육을 제공해 GA 설계사들이 현장에서 활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측면이 적지 않다”며, “KSPID는 GA에서 위탁 판매하는 모든 금융상품을 총 망라하기 때문에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상품을 제안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다”고 소개했다. KSPID는 금융 환경 및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현재까지 3번의 업데이트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한국 GA홀딩스는 자체적인 설계사 급여 책정 시스템도 보유하고 있다. 여타 GA들은 보험사로부터 상품 판매 수수료를 받아 모집인의 GA 내부 직위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이치호 회장은 “보험사 지급 수수료에 종속된 수수료 시스템을 따를 경우 재무컨설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특정 회사의 특정 상품이 프로모션을 하기 위해 수수료율을 일시적으로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해당 상품으로의 유인만 늘기 때문에, 종속시스템 하에서는 고객의 재무설계에 왜곡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경우 불완전판매나 부실판매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이 회장은 “GA 자체적인 비중에 의해 합리적인 배분이 보수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며, “하지만 예측 부분이 잘못되면 경영상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검증작업이 필수”라고 조언했다.
◇ 사원주주 형태로 애사심 ‘UP’
이치호 회장은 “GA의 경우 회사가 이익이 날 경우 보험 설계사들은 본인이 영업을 잘해서 수익이 났다고 생각하는 반면, 경영인들은 경영을 잘해서 이익이 났다고 주장한다”며, “이런 점에서 구성원들이 자본을 출자해 만든 한국GA홀딩스는 모든 영업일선의 설계사부터 임원들까지 모두가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구성원들의 애사심이 높아 한때 회사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도 설계사 이직에 따른 충격이 다른 GA에 비해 적었다고 한다. 지금도 철새 설계사들이 GA업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한국GA홀딩스 소속 보험 설계사들의 상당수가 8년 이상 장기 근속자들이다.
◇ “노하우 공유하고 싶다”
사실 한국GA홀딩스가 처음부터 이런 시스템을 구비하고 GA 영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한국GA홀딩스의 문을 열고 처음 영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국내의 사례가 없어 외국의 사례를 찾아 참고할 정도로 힘든 태동기를 겪었다고 한다. 이치호 회장은 “당시 GA라는 조직 자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세무나 회계 부분에 대해 관공서조차 관련 규정을 찾지 못해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우리 회사의 경우 업력이 이젠 제법 오래됐기 때문에 나름의 노하우를 쌓아 놓고 있지만, 아직 대부분의 GA들이 이런 부분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국GA홀딩스는 자사의 경영 노하우를 다른 GA들에도 공개하자는 취지로 ‘GA창업지원센터’를 지난 4월 설립했다. 10년 동안 GA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비결을 매뉴얼화해 이를 누구나 참고할 수 있도록 공개하겠다는 것. 여기에는 GA를 설립할 때 필요한 기본 지식부터, 보험사와의 협상 방법, 사업비 분석, 수당제도, 교육 컨설팅 등 GA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노하우들이 담겨있다.
무엇보다 이 같은 과정을 무료로 진행하기로 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가장 큰 이유는 GA업계의 동반성장이다. 이 회장은 “힘들게 쌓아 온 노하우를 공개한다는 것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GA들이 건실하게 동반 성장해 파이를 키우는 것이 우리 회사에도 이익이 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설계사 증원 과정에서 상품 구성이 다양하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설계사들이 ‘GA는 불안하다’며 손사레를 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수많은 GA들이 생겨나고 문을 닫는 과정에서 생긴 불신”이라고 말했다. 즉 자사뿐만 아니라 다른 GA들이 모두 잘 되고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GA업계 전체의 평판이 좋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다른 GA들을 컨설팅하면서 얻게 되는 노하우다. 이 회장은 또 “과외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면서 본인도 배우는 것이 있는 것처럼 노하우를 전수하는 과정에서 미처 우리가 겪지 못한 난제들에 미리 대비할 수 있는 부분도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GA, 보험업계에 대한 이치호 회장의 강한 의지다. 지난 1980년 흥국생명에 입사하면 보험업계의 첫발을 들인지 32년을 맞이한 이치호 회장은 “영업이 안 돼서 망하는 GA들은 어쩔 수 없다지만, 경영상의 준비가 안 돼 나가떨어지는 후발 GA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며, “지금까지 나의 이익을 위해 일했다면 이제는 뭔가 갚아야 할 시기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 보험업계 지각변동 ‘긍정적’ 신호
이치호 회장은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보험업계의 M&A바람에 대해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이치호 회장은 “과거에는 경영상태가 좋지 않은 회사를 나눠 가지는 형태였지만, 지금은 잘 되고 있는 회사들이 오너의 경영적인 판단에 따라 매각하고 매입하는 과정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과거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재직했던 ING생명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회장은 “IMF직후 ING 영업총괄부사장직을 맡아 업계 최하위권이었던 네덜란드생명을 이름을 바꿔 4~5위권까지 끌어올렸던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한 기분이 든다”며, “ING생명이 매각된다니 인생의 가장 보람있었던 한 구간이 없어지는 것 같은 심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편 보험상품 판매채널의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GA의 성장세를 점쳤다. 이 회장은 “보험업계 역시 상품의 제작과 판매가 분리되는 제판분리의 형태로 가야할 것이고 그 중심에 GA가 서게 될 것”이라며, “지금 답보상태이긴 하지만 금융상품 판매 전문회사 제도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으면 제판분리 작업은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프 로 필 〉
최광호 기자 h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