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액연금 가입하면 무조건 손해?
생명보험업계와 금소연의 공방은 금소연이 지난 4일 변액연금상품 비교정보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금소연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조사 발표한 보고서에서 “60개 변액연금보험을 대상으로 납입 보험료 대비 연간 수익률인 실효수익률은 평균 1.5%였다”며, “지난 10년간 연평균 물가상승률 3.19%를 웃도는 상품은 6개 상품에 불과해, 변액보험 상품 중 90%가 물가상승률에 못 미쳤다”고 발표했다.
금소연은 이 보고서에서 납입보험료에서 사업비를 빼고 펀드적립금만을 기준으로 수익률을 계산하는 기존의 변액보험 펀드수익률이 아닌 ‘실효수익률’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금소연의 실효수익률은 납입보험료 전체와 10년 후 해지환급금이 그 기준이 된다.
책 한권에 달하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납입하는 보험료의 10~14%는 사업비로 쓰인다는 점과 △장기투자를 해도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수익률을 기록한다는 두 가지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사실상 ‘정상적인 판단이라면 변액연금보험에 가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 생보업계가 펄쩍 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 생보업계 금소연에 역공
생명보험협회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생보협회는 “변액연금의 연수익률을 월납(월 20만원, 10년납) 계약을 기준으로 가정했지만, 실제 연수익률 산출시에는 총납입보험료(2400만원)가 계약체결시점에 한꺼번에 납입한 것으로 가정해 산출했다”고 지적했다. 즉 매월 20만원 씩 10년간 납입한 것이 2400만원이기 때문에, 적금상품에서 이율을 계산하듯 전체 수익률을 불입기간의 절반, 즉 5년으로 나눠야 하는데, 10년으로 나눠 환산 수익률이 반토막 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생보협회는 교보우리아이변액연금을 예로 들며 “적립금 3375만원을 납입금 2400만원으로 나누어 수익률을 산출한 후(40.6%), 이를 10년으로 나누어 연수익율(4.06%)을 산출했지만, 이는 10년이 아닌 5년으로 나눠야 한다”고 항변했다. 생보협회의 주장에 따라 금소연 보고서를 다시 살펴보면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수익률을 기록한 변액보험 상품은 54개에서 19개로, 전체 상품의 90%에서 30%수준으로 크게 줄어든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이 부분만 봐도 굉장히 악의적인 발표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생명보험협회는 이 밖에도 특정시점 수익률을 기준으로 해 단기시점 수익률을 미래 수익률로 가정했다는 점과 펀드 설정당시 금융시장 여건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점 등을 문제 삼았다.
또한 보험업감독규정은 협회가 아닌 다른 자가 비교·공시하는 경우 상품공시위원회와 협의해야 하지만 아무런 협의도 없었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10일 금융위에 고발한 상태다.
◇ 금소연의 반박
금융소비자연맹은 진실을 호도하지 말라며 맞서고 있다. 금소연 조연행 부회장은 “수익률 계산은 생명보험협회에서 하는 방법 그대로 한 것”이라며, “적금의 경우 10년 납입을 평균 예치 5년으로 잡는 것은 맞지만, 변액보험 펀드의 연환산 수익률은 총 투자수익률을 불입기간 전체로 나누는 방식으로 산출한다”고 주장했다.
조 부회장은 또 ‘특정 상품만 골라 조사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쓰레기 펀드는 제하고 우량펀드·대표펀드 만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며 “업계에서는 그 부분(일부 펀드만 조사한 것)을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가 이뤄진 취지에 대해서는 “변액보험의 상품정보와 함께 변액보험을 일반적인 보험상품처럼 가입하고 깨지 않으면 되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데, 펀드와 마찬가지로 자본시장의 동향에 따라 혼합형·채권형·주식형 중에서 본인이 판단하고 바꿔줘야 한다는 점을 소비자들에게 알리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금소연 자료의 신뢰도는 어느정도?
생보업계는 금소연 자료 자체의 신뢰도를 부정하고 있다. 표본조사의 한계와 함께 산식에도 허점이 많다는 주장. 하지만 일부 오류는 있더라도 일정 수준의 신뢰도는 가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금융소비자연맹 내부에도 보험사에서 계리업무를 맡았던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작업에 참여한 자료이니 만큼 허무맹랑한 결과를 산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만기 후 연금을 수령하는 것이 목적인 연금보험을, 해지환급금을 기준으로 평가했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 생보사들은 알고 있었다
한편 이번 논란의 핵심인 납입보험료 대비 수익률을, 개별 생명보험사들은 이미 주기적으로 산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이를 통해 납입기간 10년 경과시점 이전에는 원금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도 모두 알고 있다고 한다. 다년간 중견 보험사 상품담당 업무를 해온 한 관계자는 “생명보험사에서 변액연금보험에서 해지환급금이 납입보험료를 앞지르는 시점을 조사하면 대충 10년 안팎으로 나온다”며, “이런 조사를 통해 사업비 과다 등의 문제점도 모두 인식하고는 있다”고 말했다. 이 부분은 “10년 납입해도 원금에 못 미친다”는 금소연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관계자는 또 “펀드 적립금 위주로 수익률을 산출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사업비에 대한 부분을 시각적으로라도 숨길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 곪았던 부분이 터진 것
생명보험업계 일각에서는 오래 전부터 금소연이라는 조직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왔다. 금소연은 소비자정보잡지 등도 발간하고 있는데 보험사들에 광고를 받는 등 사실상 영리기관이나 다를 바 없다는 주장. 이에 대해 금소연 조연행 부회장은 “미국의 경우에도 컨슈머유니언에서 발간하는 컨슈머리포트가 있듯, 금소연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보업계가 금소연을 부정하는 심리에는 사실상 금소연을 이끌고 있는 조연행 부회장이 대형 생명보험회사 출신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업계 안팎으로 금소연과 조연행 부회장을 두고 여러 루머 또는 음해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또 영세한 소비자단체 특유의 투쟁적인 자세는 이를 상대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금소연의 영향력은 꾸준히 커져왔다.
따라서 생명보험업계 시각에서는 신뢰할 수 없는 조직이 신뢰할 수 없는 잣대로 순위를 쏟아내는 것이 불쾌했던 것이고, 금소연은 그런 업계가 부당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금소연이 발표하는 자료는 업계 공공의 적이자 관심사가 돼왔다.
이런 갈등이 이번 사건으로 이렇게 크게 터진 것이라는 게 전반적인 해석이다.
◇ 근본적 해결책은?
이번 논란이 된 금소연 자료가 업계 안팎에 이렇게 큰 반발과 호응을 이끌어 낸 배경은 소비자들이 가장 궁금했던 점을 관통했기 때문이다. 생명보험사들은 펀드편입액대비 수익률만 공시하고 있다. 변액보험 가입자들은 보험사 홈페이지를 통해 해지환급금을 확인할 수 있지만 현재 시점의 환급금만 알 수 있지 미래의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변액연금보험이 사업비로 10~14%를 공제한다는 점도 소비자입장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공시제도와 사업비 부문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보험연구원 진익 박사는 사견임을 전제로 “금소연의 자료가 운용성과를 보여주는 방식 자체는 학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쾌한 부분도 있지만 반성할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보험사에서 가입당시 수수료, 위험보험료를 알려주고 이를 차감한 성과와 차감하지 않은 성과를 모두 보여주고 ‘그럼에도 이런 장점이 있으니 가입하라’는 식의 영업을 했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진 박사는 또 “장기적으로는 비용이 들더라도 생명보험협회의 변액보험 펀드수익률 공시가 금융투자협회의 뮤추얼펀드 공시 수준의 양과 질을 갖추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며 “공시에 관해 금투협회가 가지고 있는 수준의 자율규제 권한을 생보협회에도 주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업비 문제와 관련해서는 “면밀히 따져봐야겠지만 헤지펀드의 경우 성과보수가 20%에 달하기도 하는 만큼 높다고만 볼 수는 없다”며, “현재 선취방식의 수수료를 후취방식으로 바꾸는 등의 노력은 검토해볼만 하다”고 말했다.
한편 금소연의 보고서를 인정하는 업계관계자들도 이번 사태가 장기화 되는 것은 우려했다. 한 외국계 생보사 고위 관계자는 “금융소비자연맹의 자료는 오히려 업계에서 공시해야 하는 자료라고 볼 수도 있는 만큼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선 영업조직에서 입을 파장을 생각할 때 금소연도 이 정도로 문제를 제기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최광호 기자 h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