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주민의 1%이상이 가담
지난 주 태백 지역 보험사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경찰조사 결과 13일 현재까지 연루된 것으로 파악되는 태백 주민은 560여 명. 태백시 주민이 4만명 수준임을 감안하면 전 주민의 1%가 넘는 인원이 가담한 것이다. 이중 전·현직보험설계사는 70여 명, 병원장과 사무장도 7명 연루됐다. 병원이 건강보험공단에 부당 청구해 챙긴 요양급여비가 17억1000만원, 주민이 허위 입·퇴원확인서를 발급받아 타낸 보험금이 140억 여원으로 추산되는데, 총 150억원이 넘는 규모다. 이 사건이 터지자 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못 타먹은 사람이 바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 지역에서 집중돼 나타나는 보험사기는 태백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해에는 순천지역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역시 순천지역의 모 병원과 공모해 벌어졌다.
지역 보험사기는 특히 지역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순천지역 보험사기를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순천지역에서는 보험사기 범행이 널리 퍼져 2-30대의 젊은 사람들이 다수의 보험에 가입하고 특정 병원에서 무릎 관절경 수술을 받고 반복 입원으로 보험금을 지급 받아 생활하고, 사채업자·지역폭력배·유흥업소 업주들이 브로커로 활동하면서 다방·유흥업소 여종업원 및 도박자금 채무자들을 보험에 가입시켜 고의 무릎 수술로 보험금을 지급받아 채권을 회수하고 있는 등 지역사회 발전에 저해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특정 지역에 집중돼 나타나는 보험사기는 해당 지역의 경제난이 심각하거나 지역 병원이 적극적으로 보험사기를 이끄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보험사들도 한 지역에서 꾸준히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다발성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에 대해 주의깊게 모니터링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20대가 주축인 스마트폰 보험사기
스마트폰 분실보험을 악용한 보험사기도 문제가 되고 있다. 스마트폰 보험사기는 특히 젊은 층이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9월말까지 휴대폰보험 사고건수는 28만 9001건으로 2009년말(2만 8480건)보다 무려 10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지급보험금 역시 1091억 5200만원으로 2009년보다 9배 이상 증가했다. 금감원은 이처럼 보험금 지급이 늘어난 이유로 보험사기의 만연을 꼽고 있다. 이에 따라 2009년 34%에 불과했던 휴대폰보험 손해율이 지난해 90.4%로 급증했고, 올해에는 9월말 현재 131.8%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 “보험으로 수리하세요”
자동차 정비업체의 보험사기도 심각한 수준이다. 실제로 지난해 자동차보험 손해율 대란의 원인중 하나로 자기차량손해담보 할증기준금액의 증액을 들 수 있는데, 할증기준이 50만원에서 200만원 상향조정되면서 200만원에 맞춰 불필요하게 차량을 수리해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고가 나지 않은 차량도 사고가 난 것으로 꾸며 이른바 ‘드레스업’등의 튜닝을 해주다 적발된 업체도 상당수다.
정비업체는 2000년 3010곳에서, 2009년 4910곳으로 9년새 63.1% 증가했는데, 때문에 생계가 곤란해진 일부 정비업체들이 손쉽게 돈을 버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품업체와 결탁해 보험사기를 저지르는 케이스다. 차량이 입고되면 정비공장이 보관하고 있는 중고품, 재생품 또는 비품으로 수리하고 부품상이 신품으로 청구하거나, 정비공장에 납품하지 않은 부품을 보험사에 청구해 그 이득을 일정비율로 분배하는 방식이다.
또 정비공장에서는 면책금을 차주에게 받지 않고, 부품상에 면책금액만큼 부품을 허위청구(가청)해 손실을 보전하거나, 정비공장에서 순정품으로 사진 촬영 후 비순정품을 사용하고, 부품상에서는 순정품으로 청구하여 차액을 일정비율로 분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렌트업체와 결탁해 대물차량 소유주가 렌트카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임대차 계약서를 위조, 일정기간 사용한 것처럼 청구해 보험금 수령 후 정비업체와 렌트업체가 일정 비율로 편취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 솜방망이 처벌도 한 몫
보험사기범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도 보험사기 확산에 한 몫하고 있는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지난해 3월 박모씨(28)는 무료로 차량 외관을 ‘업그레이드’ 해준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자동차정비업소를 들렀다. 이 정비업소는 차량을 맡기면 해당 보험사에 자기차량담보 사고로 허위 신고한 후 차량의 외관을 뜯어 고쳐주는 식으로 영업을 해왔다. 이 사건으로 해당업체 사장은 기소됐지만 박모씨는 80만원을 내면 합의를 해주겠다는 보험사의 요구에 응해 경찰의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특히 박모씨의 차량수리비가 총 200만원에 육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험사기가 적발됐지만, 120만원의 이득을 취한 꼴이다. 박모씨의 경우처럼 보험사의 솜방망이 처벌도 보험사기 확산에 한 몫 하고 있다.
보험사기 가담자가 보험사의 고객이고, 또 평판의 악화를 우려해, 소액 보험사기의 경우 지급된 보험금을 회수하거나 계약을 해지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짓는 일이 다반사라는 얘기다. 또한 인력 부족을 이유로 소액사고는 물론 인사사고의 경우에도 보상직원이 사고현장을 살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이다. 사법부 역시 보험사기범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최근 발표된 원광대학교 황만성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03년 1월부터 40개월 동안 판결을 받은 보험사기 피고인 1173명중 징역형 비율은 283명(24.1%)에 불과하고,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대부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2002년 당시 연구에 비해 징역형과 집행유예 선고 비율은 줄어든 반면 이보다 가벼운 처벌인 벌금형은 9.3%에서 28.8%로 크게 늘었다. 직업에 따른 편차도 큰 편인데, 노동자와 무직자의 경우 징역형비율이 각각 37%, 30.2%로 비교적 높은 수준인 반면, 의사의 징역형 선고 비율은 1.5%에 불과하고 대부분 벌금형(89.4%)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 “정부·보험업계 모두 노력해야”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지난 2006년 1780억원에서 2007년 2045억원, 2008년 2548억원, 2009년 3304억원, 2010년 3467억원으로 4년새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적발되지 않은 보험사기까지 감안하면 보험사기 피해액은 약 2조원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금융위는 올 들어 보험사기 관련 규정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보험업법을 개정하면서 보험사기죄 신설을 추진했지만, 법무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금융위가 다시 보험사기죄 신설을 추진하는 것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보험사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명확한 법적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앞서 올 초에는 국무총리실에서 보험금누수방지 원년을 선포하고 각 부처에서 추진계획을 마련했다. 또 서울지방검찰청에 보험범죄전담 합동대책반을 설치했으며, 경찰에서는 상반기에 기획 수사를 진행한 바 있다. 또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 역시 다양한 유형의 보험사기에 대해 대응방안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업계 내에서는 중복보험 감시시스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 시스템만 제대로 작동해도 상당수 ‘꾼’들의 보험사기는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의도적으로 보험사기를 저지르는 경우에는 실손의료보험과 입원일당 담보가 있는 다수의 상해보험에 가입하기 때문에, 중복보험 감시시스템이 있으면, 사전에 같은 담보에 다수의 보험이 가입돼 있으면 일단 의심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손해보험협회 김성 보험조사팀장은 “개인이 다수의 보험에 가입을 하는 중복보험에 대한 언더라이팅 시스템이 개발되면 상당수 보험사기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시스템은 아직 개발단계에 있다. 보험사의 보험사기 조사원에 대해 자격제도를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한 대형 손보사 보험사기 조사 담당자는 “민간 보험사에서 보험사기를 조사하는 데 있어 실무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보험사기 조사 자격제도가 신설되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보험사기 적발인원 〉
(단위: 명, %)
〈 보험종류별 적발금액 〉
(단위 : 백만원, %)
(자료 : 금융감독원)
최광호 기자 h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