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한 성장잠재력이 재정건전화에 걸림돌
남유럽 재정위기가 잠잠해지는 분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 5위의 경제대국 스페인이 무너질 경우 유럽 전역으로 재정위기 여파는 급속히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정부의 재정 규율 실패, 경상수지 불균형 심화, 금융권 재무구조 악화 등 유로존 위기의 발현 과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 홍석빈 책임연구원은 ‘7월 고비 넘긴 남유럽 스페인 더 지켜봐야’란 보고서를 내고 이같이 설명했다.
이에 본지는 이 보고서를 통해 남유럽발 금융위기 전망을 살펴봤다.
◇ 금융위기, 부동산 버블 붕괴가 재정악화 초래
이 보고서는 EU 20개국 총 91개 은행(은행산업 전체 자산의 65%)을 대상으로 실시된 스트레스 테스트 1차 결과 모두 7개 은행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중 5개가 스페인 저축은행들이며 7월 위기설의 중심국가가 스페인임을 방증하는 결과라고 덧붙였다.
홍석빈 책임연구원은 “스페인은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모두 27개 은행이 테스트 대상이 돼 14개의 독일을 제치고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며 “비관적인 시각들은 그리스에서 시작된 남유럽 재정위기가 스페인을 넘어 유로존 전체 위기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스페인 경제가 불과 한두 해만에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11.2%, 정부부채 비율이 53.2%에 이르게 된 이유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경기 침체로 경상수지가 크게 악화되고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지난 10여 년간 건설경기 호황에 힘입어 유로존에서 가장 많은 고용을 창출하던 부동산 건설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급격히 침체되면서 금융기관 부실을 낳았고 이를 정부가 떠안았기 때문이다 평가했다. 특히 주택경기 호황에 힘입어 부동산 모기지 대출을 중심으로 2004년부터 급성장한 저축은행들의 부실이 크게 늘면서 급기야 지난 5월말 까하수르(CajaSur)의 파산신청을 시작으로 정부가 저축은행을 구제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 보고서는 스페인이 재정건전성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PIIGS 국가들 중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3분기에 가장 큰 규모(약 472억 유로)의 국채 만기가 도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민간부채가 과다한 점도 정부재정에는 잠재적 불안요인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부동산 붐에 편승한 가계의 주택담보대출과 건설기업의 차입이 크게 늘어나 있는 상태라는 것.
GDP 대비 민간부채는 2000년 54.2%에서 지난 해 194%까지 늘었으며 PIGS 국가들 중 최고치다. 가계부채 규모도 지난 해 3분기 106%에 달해 유로존 평균(95%)을 넘어섰다.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단기채무도 GDP의 30%를 초과해 민간부문이 부실화 될 경우 부담을 정부가 떠안게 돼 재정건전성은 오히려 더 악화될 위험도 있다.
재정의 중앙-지방간 불균형 구조와 지방정부의 비협조도 숨어있는 위기라고 지적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전체 재정수지가 흑자였다고는 하나 중앙정부의 경우 595억 유로 흑자를 기록한 반면 지방정부는 236억 유로 적자를 보였다.
지방에 대한 영향력이 큰 야당은 부채상환 목적으로 지방정부 토지강제처분 헌법소원을 청구한 데 반발하는 등 세수확보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보고서는 연정상태로 집권 중인 현 정부는 정책추진력이 약해 재정건전화 목표 달성을 위해 매년 2.1%(360억 유로)씩의 재정적자를 감축한다는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 금융권 구조조정과 부동산 시장 안정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
이 보고서는 스페인 재정위기의 아킬레스건으로 우선 주목해야 할 부문은 금융권 구조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발표된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5개 금융기관 모두는 저축은행들이라는 것. 금융권 구조조정의 핵심은 45개 비상장 저축은행(Cajas)들에 대한 인수합병과 대형 상업은행들에 대한 재무건전성 제고라고 분석했다.
저축은행은 모기지 대출비중이 높아 부실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자산규모는 전체 은행권의 40.4%로 상업은행보다 작지만 모기지 대출 비중은 64.5%를 점유하고 있다. 이들은 2007년을 정점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의 건설업 붐을 타고 지방 건설회사 및 부동산개발사들에 대해 대출을 크게 확대해 왔다.
2007년 1% 남짓한 수준에 그쳤던 저축은행들의 부실여신 비율은 지난 해 말 9.6%까지 상승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스페인 정부는 저축은행의 수를 절반으로 축소한다는 목표하에 중앙은행에 은행구조조정에 대한 권한을 위임했다.
그 결과 지난 6월 29일 스페인중앙은행(BDE)은 45개 저축은행들에 대한 우선주 취득방식의 공적자금 투입과 인수합병을 통해 구조조정 작업을 마무리 했다고 공표했다. 그간 은행업계 부실에 대비해 조성해 놓은 990억 유로의 은행구조조정기금(FROB) 중 102억 유로를 투입해 저축은행을 39개에서 12개로 조정하는 작업을 완료했다. 또 일반 상업은행들에 대해서도 그 동안 실시되어 온 동태적 대손충당금(Dynamic Provisioning) 적립기준을 강화함으로써 건전성을 높이도록 조치했다.
이 보고서는 저축은행들의 재무상태를 볼 때에 이번 조치는 응급조치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부실여신으로 인한 파산 방지 용도에만도 구조조정기금(FROB) 대부분이 소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해관계자들의 저항도 순조로운 정책 추진을 낙관할 수 없게 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저축은행들이 제출한 재무구조개선과 합병방안에 대해 저축은행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는 지역 정치인들과 합병으로 인해 고용과 임금수준 면에서 영향을 받게 될 노조 등이 정부의 재무구조 개선안과 은행 합병안에 이견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계획된 재정건전화 목표를 달성하고 저축은행 구조조정 등 금융위기 가능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결국 실물경제의 성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조업 비중은 낮아지고 제조업 기반 약화는 소비재와 중간재 등을 수입에 의존케 해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 구조를 띠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2000년대 들어서는 건설붐 및 관광업 등 서비스부문에 의존한 내수형 성장을 해 온 탓에 약화된 제조업 경쟁력을 단기간에 회복시키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 최근 청신호에도 불구하고 불안 장기화 될 것
이 보고서는 다행히 최근 몇몇 청신호가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6월 이후 네 차례에 걸친 국채발행과 민간은행들의 올해 채권 만기 530억 유로 중 300억 유로 정도가 차환되는 등 신용경색의 숨통은 트이고 있다는 것. 스페인 정부는 7월 중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 319억 유로에 대해서도 185억 유로를 차환했다. 나머지는 보유현금을 통해 해결하면서 상환부담이 적은 8,9월에 추가 국채를 발행한다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만기 국채의 신용디폴트스왑(CDS) 프리미엄도 지난 6월 중순 232bps로 최고치를 보인 이래 최근 200bps 이하로 내렸다.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7500억 유로(EU 전체 GDP의 6%)를 조성해 스페인 등 여타 남유럽 국가들이 제2의 그리스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스페인 국채에 대한 중국의 투자가 있었던 점도 스페인 경제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보고서는 국채발행 성공을 위기의 끝으로 볼 순 없다고 지적했다.
스페인이 발행한 국채수익률이 높아 장래 이자부담이 크고, 일부 은행들의 경우 최근 신용한도가 폐지되거나 축소되고 있어 잔여물량 차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욱이 주택과 건설부문에서 부실화될 수 있는 대출의 잠재규모는 총 1,650억 유로로 은행들이 갖고 있는 대손충당금을 700억 유로나 상회하는 수준이다.
홍 책임연구원은 “스페인 경제가 현재처럼 민간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주택경기와 관광산업 등에서의 침체가 장기화 될 경우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고재인 기자 kj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