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업계에 따르면 복수평가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일어나면서 시장에서 단수평가제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부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검토를 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의 발행에 의무적으로 두 곳 이상의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평가를 받도록 제도화 한 것이 복수 신용평가제이다.
하지만 최근 신용평가사 평가 수수료 담합, 외국계 대주주의 먹튀 논란 등이 일어나면서 복수평가제 폐지 논의가 불거지고 있는 것.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신용평가사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용평가사의 수수료 담합과, 수년간 외국계 대주주의 배당 문제 등이 표면화되면서 복수평가제 폐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 수수료 담합·외국계 신평사 먹튀 논란 등 단초
지난해 말 공정위원회는 신용평가사들이 6년동안 신용평가 수수료를 공동으로 인상하는 담합을 했다면 총 4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수수료 담합으로 국내 신용평가산업의 발전을 저해했으며 발행기업의 평가비용 부담를 초래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국내 3대 신용평가사들이 과점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신용평가 매출이 1997년 100억원 내외에서 2009년 799억원으로 8배 이상 증가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외국계 신용평가사들이 대주주인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가 유보금 없이 당기순이익 대비 100%가 넘는 배당을 해와 먹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업계에 따르면 무디스가 최대주주로 있는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최근 3년 동안 각각 당기순이익 대비 129%, 100%, 90%의 배당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치가 최대주주로 있는 한국기업평가도 2009년에 당기순이익의 100%를 배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외국계 신용평가사가 대주주로 있는 국내 신용평가사의 이익을 내부 유보금으로 적립하지 않은 채 몇년 동안 벌어들인 돈 대부분을 배당으로 돌려 먹튀 논란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배경으로 최근 정부는 신규 신용평가사의 진입으로 신용평가시장의 경쟁과 신뢰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자산운용에 대한 규제완화차원으로 복수평가제를 폐지하고 단수평가제 도입을 하는 방안을 2008년에 한차례 논의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국내 신용평가 시장이 성숙되지 않았으며 단수평가제가 도입될 경우 기업들이 더 높은 신용등급을 주는 신용평가사를 찾는 ‘등급쇼핑’ 현상이 일어난다는 우려 때문에 복수평가제 폐지에 대한 논의를 정부에서 2년간 유예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공식적으로 2년 뒤에 복수평가제 폐지에 대한 논의를 하기로 해 내년 2월에 본격적인 복수평가제도 폐지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수수료 담합, 외국계 신평사 먹튀 논란이 일어나면서 올 하반기부터 감독당국에서는 본격적인 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국내 신용평가시장 대외적 인식 달라져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은 우리나라 신용평가시장에서는 복수평가제를 일정기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과 같이 오랜 기간 자율적으로 신용평가 시장이 치열한 경쟁속에서 금융인프라로 성장을 해온 경우 신용평가사가 기업에 휘둘리지 않고 등급평가를 할 수 있다고 업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용평가 시장은 정부 주도로 성장을 해왔으며 이제 성장하기 시작한 신용평가 시장에서 단수평가제를 도입할 경우 등급 쇼핑이 일어나 국내 신용평가사의 신뢰도 저하 및 대외 경쟁력 약화,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신뢰도까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A신용평가사 관계자는 “1994년 도입된 복수평가제는 발행기업이 신용평가사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신용평가의 신뢰성 및 공정성을 훼손하는 단수평가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라며 “국내 평가시장 규모가 연간 700억원대로 차츰 성장하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 신용평가 시장의 평가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상황에서 복수평가제가 폐지될 경우에는 발행기업의 교섭력 증대와 신용평가사간 과당경쟁으로 인해 신용평가의 신뢰도가 저하되고, 신용평가의 금융인프라로서의 기능이 위축되며, 신용평가사의 대외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다양한 신규 평가 영역의 도입 및 활성화로 일정 수준까지 시장규모를 키운 후 단계적으로 단수평가제 도입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B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다양한 영역에 대한 신용평가 경험 없이 국내 신용평가 시장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신용평가 등의 도입 및 활성화로 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미국 등 선진국과 같이 기업에 휘둘리지 않고 자율적으로 경쟁에 나설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그동안 정부 주도적으로 시장이 형성된 상황이었으며 정책적 지도와 일정부문 업계가 잘못한 부분은 인정해 그런 부문이 바로 잡히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재인 기자 kj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