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황기에 대손충당금 적립률 달라야
한국은행의 정책금리 인하와 21.6조원의 특별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신용경색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제2의 금융위기설이 나오고 있어 이같은 불안심리는 가중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상을 방치할 경우 실물부실이 금융부실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돼 시스템 위기 및 불황의 장기화가 우려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의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용기 연구전문위원은 ‘신용경색 완화를 위한 긴급제언’이란 보고서를 내고 이같은 내용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본지는 이 보고서를 통해 신용경색의 해결책을 살펴봤다.
◇ 신용경색은 은행의 태도변화 및 정부 규제가 원인
이 보고서는 경기하강기에 발생하는 신용경색 현상은 자금 공급자인 은행의 태도변화, 자금수요자인 기업의 신용리스크 증가 및 은행의 대출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건전성 규제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은행의 대출 태도는 급격한 보수화로 접어들었다. 경기 침체로 은행의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 강화된 것이다. 특히, 기업대출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가계대출을 선호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9월 이후 증시침체로 인해 시중자금은 은행으로 몰렸으나 은행의 보수적 경영 행태는 오히려 강화됐다. 은행은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기업과 근본적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을 구분하지 않고 대출을 축소했다.
예금대비 기업대출 비율은 2008년 9월 77.2%에서 11월 76.1%로 줄어들었다. 기업대출 위험스프레드는 같은 기간 1.63%p에서 2.90%p로 늘어났다.
이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중소기업이라는 분석이다. 중소기업은 자본시장보다는 은행대출에 의존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불안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2008년 9월 이후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 비중을 축소했다. 기업대출 중 중소기업 대출 비중은 2008년 9월 83.6%에서 11월 82.5%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기피는 경기침체를 가속화 시키고 있다.
또한 정부의 자기자본규제 강화도 신용경색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2008년 말 금융위원회는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을 12% 이상으로 올릴 것을 권고했다. 당시 금융위의 의도는 은행이 건전성 및 대출여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향후 위기에 대비할 역량을 선제적으로 갖추게 하려는 것이었다.
자본확충펀드를 은행이 적극 활용해 BIS 자기자본비율을 12%대로 높이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은행 경영진은 정부가 개입할 가능성을 우려해 자본확충펀드를 활용하지 않고 자구노력에 의한 자본확충으로 대응했다.
은행이 자본확충펀드를 외면하고 자구책에만 의존함에 따라 자금이 은행으로 이동하고 신용공급이 축소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김 연구전문위원은 “결국 자기자본 규제수준의 강화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기업의 영업환경 악화로 신용위험 증가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소비와 수출이 급감하면서 경영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특히 수출은 2008년 11월 이후 3개월 연속 큰 폭의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해 2009년 1월 수출 증가율은 -32.8%를 기록했다.
또한 매출 감소와 경영환경의 불확실성 확대로 기업의 자금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기업의 대출수요지수는 2008년 4분기 24로 전분기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중소기업은 현금흐름이 악화돼 운전자금 확보가 필요해졌고, 대기업도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져 예비적 자금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가계의 주택자금 수요는 감소하고 있으나, 고용사정 악화 등에 따른 소득 감소로 생활자금에 대한 수요는 증가했다.
김 연구전문위원은 “국내은행은 중소기업의 신용위험이 크게 높아졌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은행의 우선주 매입해 은행경영 개입
이 보고서는 정부가 주도해 은행 자기자본을 확충하고 자기자본의무비율을 낮춰 대출여력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한편 실물부문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기업의 신용리스크를 낮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선 은행의 보수적 태도를 견제할 수 있는 자본확충 방식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본확충을 은행의 자구책에만 의존하면 기업의 자금난은 오히려 가중된다는 것.
김 연구전문위원은 “은행의 자본적정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추가대출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 은행의 자본확충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향후 보통주 매입권리를 지닌 은행의 우선주를 매입하는 방식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 이후에 은행이 신용공급을 소홀히 한다면 우선주 권리를 행사해 보통주를 매입함으로써 은행경영에 직접 개입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정부 주도 자본확충으로 추가대출여력을 극대화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논의되는 자본확충펀드 20조원을 전액 은행 자본확충에 사용할 경우 2008년 9월말 기준 10.9%인 현 수준의 BIS자기자본비율 아래서 184조원의 추가여력이 발생한다는 것.
자본확충 뿐 아니라 은행이 보유한 부실자산도 일부 매입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부실자산을 해소할 경우 추가적 대손충당금을 준비할 필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자본확충을 통한 대출여력 증대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설명했다.
부실자산처분을 위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중소기업 대출채권 등을 주택금융공사 또는 자산관리공사 등이 매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저축은행의 경우 자산관리공사의 부동산 PF대출 채권 매입을 통해 PF대출 연체율이 2008년 12월말 기준 13.0%로 2008년 9월말 대비 3.9%p나 하락한 것이 좋은 사례라고 덧붙였다.
◇ BIS비율 낮춰 대출여력 높여야
이 보고서는 시중은행에 대한 BIS 자기자본비율 규제를 현행 10~12%에서 8%로 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전문위원은 “자본금을 20조원 확충하는 것과 병행해 목표 BIS 자기자본비율을 8%로 낮출 경우 추가대출여력이 680조원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또 시중은행과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는 지방은행에 대해서는 BIS 규제를 6%로 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전문위원은 “현행 저축은행에 대한 권고비율 5%와 국제은행에 대한 최소규제인 8%의 중간인 6%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책은행의 대출여력 및 보증기관의 보증지원을 확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지원을 통해 기업대출 비중이 높은 산업은행 및 기업은행의 현재 각 10조원의 자본금을 단계적으로 상향조정해야한다는 것. 또한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상한도 상향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는 우량 중소기업에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이 회사채나 CP 등을 직접 매입해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을 통한 신용공급을 촉진함으로써 신용공급경로를 다양화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 출자로 중소기업의 유가증권에 투자하는 ‘중소기업지원펀드’의 조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모투자전문회사 등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프라이머리 CBO 등을 적극 활용해 다양한 자금을 기업에 수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장기 과제로 동태적 대손충당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산증가율에 대응해 대손충당금을 적립하도록 함으로써 경기변동에 따른 신용공급 흐름의 변동폭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
김 연구전문위원은 “호황기에는 자산증가율이 높기 때문에 더 많은 대손충당금을 적립해 대출의 과다 팽창을 억제하고 자산 증가율이 낮은 불황기에는 대손충당금을 적게 적립하게 함으로써 신용공급의 급격한 위축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재인 기자 kj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