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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을 위한 변명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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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9-01-14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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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일 대한석탄공사 사장

경제학 박사

“여러분, 태국 방콕의 잠롱 시장 아시죠? 바로 이 분이 농협의 ‘잠롱’같은 분입니다.”

바로 얼마 전, 서울의 어떤 농협에서 있었던 행사장에서 사회를 보던 농협의 간부가 저를 소개한 말입니다. 처음 그 말을 듣고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저를 ‘잡놈’이라고 표현하는 줄로 착각할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물론, 하루에 한 끼를 먹거나 폐품 창고를 개조해서 집으로 사용하는 잠롱 같은 청백리는 아닙니다. 나중에 대화를 나누면서 그 간부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저를 그렇게 소개한 것은 ‘개혁파’라는 의미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개혁의 어려움

며칠 전, 뉴스로 보도된 사진 한 장이 무척 마음에 거슬렸습니다. 농협의 중앙회장과 중요 간부들이 나란히 늘어서서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의 인사를 하는 사진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정치적 대형 비리와 전임 농협 회장이 관련된 사건 때문에 그런 ‘이벤트’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날 여러 명의 농협 직원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창피하다면서 말입니다. 심지어 제주도에서 술을 마시던 농협 간부도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저에게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있어야 옳습니다. 농협을 떠난 지 4년이 넘은 저에게 왜 전화를 할까요? 표현이 부적절하긴 하지만 왜, 잠롱과 비유할까요?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30년 동안을 농협에서 일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듬해인 2004년에도 농협은 새로운 자리매김을 위하여 진통을 겪었습니다. 그 때도 농협은 슬슬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구렁이 담넘어가듯 태풍을 피해가려고 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농협의 환골탈퇴를 주장했던 대표적 개혁파가 바로 저입니다.

제가 당돌하게도 ‘대표적 개혁파’라고 말하는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본부에 근무했던 웬만한 간부라면 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바로 그 ‘상식’ 때문에 저를 ‘잠롱’에 비유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임원회의에서 회장의 급여삭감을 비롯한 대대적 개혁을 건의했습니다. 회장의 문제에 까지 직격탄을 날렸으니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옆에 있던 다른 상무가 책상 밑으로 저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입사 동기 중에 선두주자였고 정년이 2년 넘게 남았던 저는 그 해 말 인사에서 한직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리고 10여일 후, 농협을 떠나 강원도 정무부지사로 갔던 것입니다. 그만큼 농협에 있어서 ‘개혁’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아니, 다른 기관이나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개혁을 말하면 왕따 당할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음을 독자로부터 인증받기 위해서입니다. 배경을 모르고 글을 읽으면 “당신이 그곳에 있을 때는 침묵하다가 이제 와서 말이 많냐”거나 “너나 잘 하세요”라는 비난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신념을 갖고 좋은 개혁을

요즘 또 농협이 개혁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보도를 보니까 별별 아이디어가 다 나오는 것 같습니다. 물론 개을 하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농협이 비리에 휘말려 끽소리 못하고 뭇매를 맞는 상황을 이용하여 시류에 편승한 ‘농협 박살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특히 농협의 비리를 초래한 근본 원인을 ‘제왕적 1인 지배체제’로 규정하고 ‘회장의 임원추천권 포기’를 개혁의 핵심인 것처럼 몰아가는데 과연 그래도 되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그럼 농민의 대표요 조직의 수장인 회장은 뭐하는 사람입니까? 인사추천위원회에 얽힌 또 다른 유형의 부작용, 각종 연고를 고리로 하여 벌어질 인사운동, 집단 지배체제로 갈팡질팡할 농협의 미래가 뻔히 눈에 보입니다.

개혁의 핵심은 농협이 농민의 조직으로서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하도록 쇄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율적 경영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반면에 감시·감독기능을 확실히 작동시키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농민의 자조단체인 ‘협동조합’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감정’이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뒤죽박죽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제발 이번만은 좋은 개혁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농협인들도 머리만 조아릴게 아니라 소신을 갖고 할 말은 해야 합니다. 농협이 농민을 위한 농민의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농협을 떠나서도 농협직원이었음이 늘 자랑스럽기를 기대합니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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