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장서 과당경쟁 유발…신뢰도·인프라 위축
금융시장 변화에 맞춰 신평사 기능과 역할 커져
글로벌 경쟁력 갖춰 세계적 신평사 도약 필요해
금융시장의 불안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한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올해 제2금융권에 변화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특히, 내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각 업권별로 경쟁력 확보를 위한 규모확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무한경쟁 체제에 돌입하게 되면 은행, 증권사 등이 대형 자본을 가지고 무차별적인 업권간 진출이 예상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취약한 제2금융권은 그동안 쌓아온 업권의 특화 경쟁력 확보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본지는 제2금융권을 대표하는 업권별 마켓리더들을 통해 변화하고 있는 금융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업계의 현황과 전망, 그리고 생존을 위한 노하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신용평가가 변화하고 있는 국내 금융시장에서 핵심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완화 움직임으로 시장 규모 확대가 기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에 핵심 혈맥으로 작용하고 있는 신용평가업도 여러가지 환경의 변화가 전망되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외국계 신용평가사가 국내 신용평가사 경영권 확보 등을 통해 국내 시장 진출로 업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새로운 신용평가 부문 확대 등을 계획하고 있어 신용평가시장 규모 역시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국내 토종신용평가사로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한신정평가가 업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전격적으로 물적분할을 통해 한국신용정보의 신용평가사업본부에서 한신정평가로 분사해 조직을 개편하고 새로운 시장에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한신정평가 매출은 ABS 및 회사채의 발행 증가와 PF평가부문의 고성장을 통해 전년대비 33.5%의 매출 증가세를 보이는 등 양호한 실적을 시현했다.
최근 신용평가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신정평가를 이끌고 있는 수장은 이용희 대표〈사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며 재정경제부 국민생활국장, 대통령실 국민경제자문회의 기획조정실장, 주 OECD 대표부 공사 등을 거친 이 대표는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상임감사위원을 지낸 엘리트 관료 출신으로 지난해까지 한국신용정보 대표를 역임한 바 있다. 이용희 대표를 만나 변화하고 있는 신용평가 업계에서의 생존 경쟁력 확보전략과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현 단계에서 복수평가제를 폐지하면 다양한 정보 제공을 통한 금융시장 발달과 투자가 보호라는 신용평가제도의 도입 취지에 위배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용희 대표는 최근 정부의 금융 선진화 방안으로 논의 되고 있는 복수평가제 폐지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복수평가제 작은 규모에 적합…신영역 도입 등 시장키워야
이 대표는 “1994년 도입된 복수평가제는 발행기업이 신용평가사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신용평가의 신뢰성 및 공정성을 훼손하는 단수평가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라며 “국내 평가시장 규모가 연간 500억~600억원 내외로 크지 않은 상황에서 복수평가제가 폐지될 경우에는 발행기업의 교섭력 증대와 신용평가사간 과당경쟁으로 인해 신용평가의 신뢰도가 저하되고, 신용평가의 금융인프라로서의 기능이 위축되며, 신용평가사의 대외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내 신용평가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펀드평가, 지자체평가, 신용파생상품평가 등 신규 평가영역의 도입 및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신정평가와 같은 지역 평가사의 글로벌화를 촉진할 수 있는 정책도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다양한 영역에 대한 신용평가 경험 없이 국내 신용평가 시장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펀드평가, 지자체평가, 신용파생상품평가 등 신규 평가영역이 도입돼야 한다”면서 “또한 금융시장의 필수 인프라인 신용평가산업의 글로벌화는 국내 금융회사들의 국제화 수준 제고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국제적 위상 강화 및 평가주권 확보의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신용평가사 역할 더욱 커질 듯
이 대표는 급변하는 국내 금융시장에서 중립적이고 전문가적인 시각에서 신용위험정보를 제공하는 신용평가사의 역할이 향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신용평가사가 신뢰성 있고 객관적인 신용등급정보를 적시에 제공함으로써 자본시장의 신호등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원칙적으로 신용평가기관이 제공하는 신용등급은 다양한 용도로 이용될 수 있으며 실제로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신용평가업무 범위에 거의 제한이 없는 상황”이라며 “현재 국내에서는 신용평가사의 기능이 회사채 CP ABS 발행 등에 필요한 절차로만 인지되고 있지만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이후 국내 금융시장의 개방화 속도 등을 감안할 때 신용평가사의 기능과 역할도 보다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신용평가업계는 정부의 금융규제 전면 재검토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발족한 금융위원회에서는 금융규제개혁 실사단을 구성하여 상반기 중 모든 금융규제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를 실시할 계획”이라며 “또한 금융감독원에서 2007년 하반기부터 신용평가산업 규제환경 변화 대응 TF를 구성해 신용평가 관련 다양한 이슈에 대해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대표는 “이러한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중기적으로 신용평가산업과 관련한 규제 및 사업환경이 크게 변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경쟁구도 변화…국내사 글로벌 경쟁력 강화
현재 신용평가업계는 2007년 ECAI(적격외부신용평가기관) 지정을 거쳐 현재 한신정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등 3개사 중심의 경쟁구도가 유지되고 있다. Moody’s와 Fitch가 각각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어, 순수 국내자본으로 설립된 신용평가사는 3대 신용평가사 중 한신정평가가 유일한 상황이며, 향후 S&P의 직접 진출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외국계 신용평가사의 국내 시장 진입에 따른 변화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대표는 “글로벌 신용평가사의 경영권 참여로 인해 신용평가사의 평가정책에 큰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향후 경영참여 수준이 높아지면서 현재와는 다른 양상으로 신용평가시장의 경쟁구도가 변화할 개연성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한신정평가의 경우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본의 신용평가사 R&I와는 2000년부터 제휴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7년 초 중국의 신용평가사 Dagong과도 제휴관계를 수립해 한중일 3개국 신용평가사 간 전략적 제휴관계를 구축했다.
이 대표는 “향후, 평가방법론 공동 연구를 통한 각 사의 신용평가 역량 제고, 기업 및 SF부문 신용평가 업무 수행 시 상대국 기업 평가, 상대국 산업 및 기업 분석이 필수적인 자동차, 조선 등의 업종 내 기업 평가, SF 평가시 금융시장 상황 분석에서의 협조, 애널리스트의 상호 교환 근무를 통한 분석 역량 제고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신용파생상품 평가 신평사는 준비완료
최근 정부는 펀드평가 등 신용파생상품의 신규영역 허가를 검토하고 있다. 또한 시장에서도 신용파생상품의 출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신용평가 3사는 선제적으로 평가방안 마련 등 철저한 준비를 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한신정평가는 국내 신용평가 3사 중에서 가장 먼저 신용파생상품을 통한 자산유동화에 관심을 가지고 2001년부터 신용파상상품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으며, 그 성과물들을 NICE Weekly를 통해 공표함으로써 시장 참가자들에게 신용파생상품의 자산유동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도왔다”면서 “2005년 1월에는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업계 최초로 ‘Synthetic CDO 평가방법론’을 발표, 한국산업은행과 공동으로 신용파생상품 포럼을 개최, 이후 당사와 업무제휴를 체결한 일본 최대 신용평가사 R&I의 애널리스트 교류와 해외연수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신용파생상품의 자산유동화에 대한 평가방법론을 향상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한신정평가의 경우 이같은 기반으로 2006년 11월에 한국투자증권㈜의 의뢰로 국내 최초의 CLN(Credit Link Note)의 신용평가를 수행했으며, 국내 증권사가 발행한 DLS(파생결합증권), 해외에서 발행된 CLN 등 다수의 유동화에 참여해 신용평가를 수행했다. 2007년 12월에는 ㈜우리은행의 의뢰로 국내 최초의 원화 FTD(First To Default) CDS(신용스왑계약)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유동화에 참여해 신용평가를 수행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특히, 한신정평가는 신용파생상품평가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내부에서 사용되어 오던 신용파생상품 평가모델을 시장 참여자들에게 공개했으며, 이번 공개는 국내 신용평가사 중 최초로 신용파생상품 평가 모델을 공개했다는 측면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 세계적 신평사 도약은 자국 금융환경 기반
세계 신용평가시장은 S&P, Moody’s, Fitch의 점유율이 절대적이다. 이들 세계적인 신용평가사들이 전세계 신용평가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이유는 오랜 업력을 통한 평가역량 축적 및 대외 신인도 제고라는 요인도 있지만, 이들이 기반을 갖고 있는 미국, 영국의 자본 및 금융기관이 전세계 금융시장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업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일본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국 기업 및 산업에 대해서 가장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평가사는 자국 경제 및 금융 관행, 기업 운영 실태를 숙지하고 있는 자국 신용평가사”라며 “한국 금융시장 및 기업에 대해서는 어떤 외국계 신용평가사 보다 국내 신용평가사가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신용평가사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극복해야할 난관이 많은 상황이다.
이 대표는 “해외 신용평가사에 비해 평가영역이 협소해 국가 및 지방정부 신용평가, 펀드 신용평가, 신용파생상품 신용평가 등 많은 영역에서의 평가 실적이 미흡하고, 해외 투자자에 대한 신인도도 낮은 현실”이라며 “하지만, 이런 난관들은 한신정평가의 역량을 감안할 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부분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이대표는 “전 임직원들의 역량을 결집해 유일한 국내 신용평가사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매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재인 기자 kj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