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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공략 타이밍이 성공열쇠

한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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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7-03-07 20:18

글로벌 초일류 금융자본 성장기 (3) 아시아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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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부실 발목 잡혀 허우적

영미나 대륙계와 달리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은행들은 틈새시장을 잘 공략해 성공한 사례가 많다.

호주의 맥쿼리가 인프라스트럭쳐펀드로 대박을 터트리며 부상했고, 싱가포르의 DBS는 해외진출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 아시아에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한때 세계 최대 은행이었던 일본은행들은 막대한 부실로 성장의 기회를 놓쳐버려 지금까지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고, “국내시장에 안주해 경쟁을 피하고 있다”라는 내부의 비판을 받고 있다.

맥쿼리은행은 자산규모나 IB후발 주자라는 점에서 국내 은행들의 벤치마킹대상으로 자주 거론되곤 한다. 맥쿼리는 1969년 영국 종합상사의 자회사로 출발해 1985년이 돼서야 맥쿼리라는 이름으로 호주에서 은행인가를 받아 20여년의 역사밖에 안된다.

맥쿼리의 성장전략은 국내시장과 해외시장을 다르게 접근한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토털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면 해외에서는 항공, 도로 등 국가 기간산업 건설과 주요 부동산 물건에 투자하는 펀드로 공략하고 있다.

해외시장 공략에 첨병은 인프라스트럭쳐 펀드다. 정부 재정만으로 SOC건설이 힘든 경우 민간의 돈을 끌어들여 투자하는 펀드로 맥쿼리가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1996년 맥쿼리인프라스트럭쳐(MIG)를 출범시키면서다. 이 때부터 국내외 인프라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선보이며 IB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투자방식은 간단하면서도 날카롭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300명의 부동산 관련 전문인력이 인프라 건설 및 부동산시장을 파악, 투자할 물건을 선별한 뒤 직접 펀드구성에 착수한다. 그 뒤 자금이 모집되면 공사에 펀딩을 하고 창출되는 수익을 배분한다. 직접 펀드 조성에 나서거나 투자자들을 모으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이뤄진다는 것. 도로나 터널의 경우 건설 이후 통행료 등 발생하는 수입을 배당하는 방식도 사용된다.

맥쿼리의 장점은 철저히 토착화에 나선다는 것이다. 국내서 맥쿼리 코리아 인프라스트럭쳐 펀드가 코스피와 런던주식시장에 상장된 것이 대표적인 예. 이 같은 토착화는 전략적 제휴라는 이름아래 이뤄지는 데 현지시장의 기간산업 인프라 구축 진행사항 및 수익창출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기 위해서는 현지화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은 아시아시장을 주름잡던 일본계 은행들이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철수하자 이 틈을 파고들어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싱가포르정부는 DBS로 환아시아 은행이 되겠다는 야심도 갖고 있다.

DBS는 1968년 국책은행으로 설립됐고 97년 민영화됐다. 하지만 싱가포르정부가 소유한 테마섹홀딩스가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사실상 국책은행이나 다름없다.

DBS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가 몰아친 97년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해외시장개척을 시작한다. PT미쓰비시부애나은행(현 PTDBS인도네시아은행) 인수를 시작으로 98년 태국의 타이다누은행, 99년 홍콩의 광온은행, 2001년 홍콩의 다오헹은행을 각각 인수했다. 2005년에는 인도의 대형 소매금융업체인 초라만다람 인베스트먼트 앤 파이낸스와 합작 금융사 설립에 합의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확장했지만 최근에는 중국 한국 등 동북아지역까지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은 싱가포르 정부가 그동안의 물류허브중심지에서 금융허브로 확대해가고자 하는 정책에 따라 DBS도 해외시장에 문을 두드린 것이다.

미쓰비시 도쿄 파이낸셜 그룹은 1996년 도쿄은행과 미쓰비시 은행이 합병한 뒤 2001년 미쓰비시 트러스트 뱅킹그룹과 니폰 트러스트 뱅크, 도쿄 트러스트 뱅크가 합병에 현재에 이르렀다.

도쿄은행은 1946년 무역전문은행으로 설립돼 60년대말까지 일본계 은행 전체 해외점포의 50% 이상을 보유할 정도로 초기 일본계은행의 해외진출을 주도했다. 60년대말부터 유럽 미국 남미지역으로 진출하며 도쿄유럽은행을 런던에 설치했고 미국의 사우스 캘리포니아 퍼스트 내셔널뱅크(CFB)를 인수했고 CFB는 80년 스탠다드 차타드로부터 유니온뱅크를 인수했다. 특히 80년대 후반 일본정부의 국제협력기금 대행기관이라는 이점을 안고 동남아시아 시장으로의 진출을 확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80년대 남미의 외채위기로 손실이 누적됐고 90년대 개도국 대출채권의 부실로 합병에 단초를 제공했다.

미쓰비시은행은 1919년 미쓰비시 종합상사의 1개 사업부였다가 2차 세계대전후 은행으로 분리됐다. 50~60년대 일본 경제의 성장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며 미쓰비시그룹의 제조업 및 무역관련회사에 대한 자금 지원업무를 담당했다.

60년대 미쓰비시그룹의 해외자회사에 대한 무역금융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LA 파리 서울등에 지점을 개설했고, 70년대 외환 및 장기차입 증권인수업무 등에 대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일본산업은행을 설립하기도 했다. 미국시장에도 진출해 72년 미쓰비시 은행 캘리포니아를 설립해고 84년에 캘리포니아은행을 인수했다.



한기진 기자 hkj77@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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