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대부분의 은행들은 예상손실율에 따른 적립율을 산출할 시스템이나 로직을 채 갖추지 못해 임의적으로 산출해 충당금을 이미 쌓았거나 쌓아야 할 형편이다.
30일 금융계에 따르면 각 은행들의 3분기 실적발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금감원의 충당금 추가적립 권고에 따라 충당금 산출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적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지난 10월 초 내년도 말에 도입될 예상손실율에 따른 새로운 충당금 적립제도에 대비해 가급적이면 충분히 충당금을 쌓을 것을 각 은행들에 권고했다.
금감원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권고일 뿐이라고 하지만 은행 관계자들은 반복된 ‘권고’로 쉽사리 외면할 수 없을 만큼의 압박감을 느꼈다고 호소하고 있다.
아울러 금감원 권고대로 막상 충당금을 쌓으려 해도 적립율 산출을 위한 제반 데이터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뚜렷한 근거 없이 충당금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
각 은행들은 올 연말까지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실무를 진행중이었다.
이같이 다소 자의적으로 이뤄진 충당금 적립은 앞으로 있을 외부회계감사 때 문제가 될 수 있고 심하게는 “회계분식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일각에서 돌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금감원 권고를 받아들여 추가 적립한 곳은 우리은행이 1606억원, 기업은행은 예상손실율에 따른 충당금 적립을 비롯한 바젤Ⅱ 도입이라는 큰 틀에서 440억원을 추가로 적립했다. 신한은행도 금감원이 권고했던 미사용한도 뿐 아니라 예상손실율을 기준으로 한 추가 충당금 170억원을 이번에 적립했다.
국민은행은 최근 충당금 추가적립안을 은행 감사위원회에 올렸다가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은 회계법인 등과 협의하는 등 오늘(31일) 실적발표를 앞두고 주말 동안 속 앓이를 거듭했다.
하나은행은 올 3분기엔 충당금을 산출할 수 없고 연말에 시스템이 갖춰지면 그때 쌓을 것으로 내부적으로 방침을 정했지만 이 역시도 금감원의 강력한 권고 앞에서 무너지기 십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A은행 한 관계자는 “일단 쌓(았)더라도 나중에 회계감사 때 무슨 근거로 쌓았느냐고 추궁당하면 뭐라고 대답할지 막막하다”며 “회계분식 의혹을 받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B은행 한 관계자도 “충당금 로직이 안나온 상황에서 이를 미리 반영하라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며 “결국 예상손실율을 반영한게 아니라 주먹구구 식으로 충당금을 쌓게 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원정희 기자 hggad@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