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가 전격 진출할 때만 해도 한국 금융산업 발전과 금융시장 성숙이 훨씬 빨라질 것이란 기대가 압도적이었으나 이제는 그 역시 사그러 들고 있는 것이다.
내부 조직을 추스르는 일은 물론 토착화를 통해 시장에 확고히 뿌리내리는 결실을 일구지 못했고 선진금융은 이런 것이라고 선보이는데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 1년간 토착화 노력 빈약…독립적 역할 한계= 지난해 이맘때 한국금융신문을 비롯해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한국씨티은행이 독립 현지법인으로서 국내에서 얼마나 빨리 토착화하느냐에 따라 성공 속도와 수준이 결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씨티은행의 지난 1년간을 되짚어 보면 토착화보다는 씨티그룹의 표준화 모델에 따라 모든 자원, 프로세스 등을 표준화하고 또 씨티 서울지점 직원들의 ‘이식’에만 치중했다는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
결국 옛 한미은행 노조나 직원들의 불만도 이 두가지로 귀결된다. 한미 출신으로선 낯선 씨티의 방식이 결코 선진금융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 반면 은행측은 이 방식들을 고집하면서 여기에 익숙한 씨티 서울지점 출신들을 곳곳에 상급자로 배치시킴에 따라 당연히 마찰과 불만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게 은행 내외부 관계자들의 목소리다.
한국씨티은행에 정통한 한 금융계 관계자는 “씨티그룹은 맥도날드 방식으로 표준화하려고 하지만 과연 그 표준화가 국내에 맞느냐 하는 문제도 짚어 봐야 한다”며 “단순히 부수적 영업을 했던 브랜치가 아니라 지금은 엄연한 현지법인인 만큼 토착화를 통한 한국식 씨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그동안 기획이나 전략수립 및 의사결정 등의 역할을 할 필요가 없었던 소규모 브랜치가 아닌 전국적 영업망을 지닌 현지법인으로서 자율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역할이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표준화가 결국 불필요한 절차 및 비효율성을 낳는다는 의미다.
◇ 씨티만의 강점 활용 못해= 금융계 한 고위관계자는 “썩 괜찮은 제도를 국내 시장에 선보였거나 혹은 그 내부의 직원들이 선진금융을 배웠다거나, 아니면 감독당국이 씨티를 통해 선진금융의 노하우를 국내에 전파할 수 있었다거나 하는 것들이 없었다”고 통합씨티 출범 이후 1년을 평가했다.
심지어 우리가 몰라서 새로 배워야 할 선진금융이란 것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또 다른 금융계 한 고위관계자는 “선진금융이란 게 어디 있겠냐”며 “과거 LG카드 사태 때 외국인 이사들의 반대로 씨티은행 만이 지원을 안 했는데 지금 상황에선 결국 지원을 통해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은행과 달리 큰 손해 아니냐”고 일침을 가했다.
씨티은행의 강점으로 꼽히는 부유층 상대 자산관리나 글로벌네트워크를 활용한 영업 등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 시중은행의 PB팀 한 관계자는 “씨티가 자산관리에서 강점을 갖는 것은 상품이 선진적이어서 혹은 포트폴리오 구성이 남 달라서가 아니라 다양한 해외상품을 통해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이나마도 반쪽 영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전산통합, 문화적통합 등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일관적인 정책에 의해 전 은행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며 씨티식의 강점도 옛 씨티 서울지점에서만 기존의 영업을 하고 있는 정도라는 것이다.
이는 기업금융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초 시중은행 기업금융 담당자들은 국내 은행이 갖추지 못한 막강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게 됐을 경우를 두려워 했다. 하지만 막상 이런 서비스의 수혜를 받은 기업이 제한적인데다 아직까지 영업현장에서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는 게 시중은행 담당자들의 주장이다.
대형 시중은행 한 기업금융 담당 부행장은 “아직도 내부 추스르기가 안돼서인지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씨티가 디마케팅 전략을 택한 것은 ‘선택과 집중’을 위한 것이며 지난 1년동안 시장점유율이 줄어들긴 했지만 자신들의 고객군에 든다고 여기는 영향력 있는 기업에 대해선 매우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방식이어서 3~5년 후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무튼 여기서 최근의 상황을 짚어보기만 해도 전체적 평가에 대한 결론을 대신할 수 있겠다.
당초 올8월까지 전산통합을 마무리하려던 계획이 자꾸 연기되고 있다. 한미노조 파업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강한 토착은행이었던 한미의 힘과 글로벌 강자 씨티은행의 힘이 융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시그널은 잘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 말이다.
원정희 기자 hggad@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