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존속법인과 합병비율을 놓고 정면으로 맞붙어 결국 3월말 기한이었던 합병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했다. 두 은행의 반목은 합병을 통해 세계적인 규모의 은행을 만들겠다는 선언이 합병의 진짜 목적이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두 은행 직원들 및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계약서를 둘러싼 갈등은 예정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선 지난해 연말 정부가 금융구조조정 시한에 맞춰 우량은행간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라는 ‘정부 원죄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금감위 등 관련 부처로부터 지난해 12월 초부터 합병설이 흘러 나와 직원들을 자극, 두 은행이 사상초유의 1주일 파업사태를 겪었고 그 와중에 합병 MOU를 쫓기듯 발표하게 된 것이 사태의 시작이라는 중론이다.
합병하겠다는 의지만 표명했지 서로가 서로를 대등한 관계로 인정하거나 한쪽이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 같은 합병방식은 애초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두 은행은 IMF 위기 이후 대형 우량은행으로 급부상해 승승장구 해왔지만 현재는 서로를 원수처럼 헐뜯으며 소모전을 벌이고 있어 합병이 되더라도 조직간 융화가 제대로 될지 의심스럽다.
두 은행은 우선 합병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 차가 너무 크다. 국민은행은 규모 시장가치 업무영역 등 모든 면에서 주택은행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존속법인 합병비율 행명 행장 등 세부 합병조건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주택은행을 우월적 지위에서 흡수합병할 권리가 있다는 시각이다.
이에 반해 주택은행은 국민은행과의 합병은 대등합병이므로 ‘팩키지 딜’을 하듯 합병조건을 주고 받자는 게 기본 입장이다. 이에 따라 주택은행은 존속법인과 합병은행장을 손에 넣고 국민은행에게는 은행명을 양보한다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주택은행은 국민은행이 규모의 우위를 내세우자 최근 “국민주택관리기금까지 포함하면 국민은행 못지 않은 규모를 갖고 있다”며 국민은행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이같은 상반된 시각은 결국 합병계약서를 작성치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존속법인 합병비율 행명 행장 등 주요 4개 조건을 놓고 대립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금융권 일각에서는 청와대나 금감위 등 관계당국이 국민 주택은행 합병 무산이라는 사태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곧 본격 개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무성해지고 있다. 반면 두 은행에 버티고 있는 외국인 대주주의 기세도 만만치 않아 당국의 개입과 실력행사가 그다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례로 이번 합병계약서 작성의 최대 관심사였던 합병비율과 관련 두 은행의 대주주인 골드만삭스와 ING는 갖가지 시나리오에 따른 이해득실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합병비율의 조그마한 변화에 따라 대규모 지분투자에 따른 손익 규모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국이 나서더라도 외국인 대주주들이 이 같이 철저하게 손익에 따른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쉽사리 이들을 설득시키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결국 두 은행은 지난해 12월22일 합병 MOU 선언을 하면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듯이 만 3개월이 지난 지금도 합병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어떤 방법이 동원되든 간에 두 은행의 합병은 성사될 것이라는 것이 금융권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합병이 지연될 수는 있어도 무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국민 주택은행이 합병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차이가 좁혀질 수 없을 만큼 큰 데다 외국인 대주주까지 기세 당당히 버티고 있어 합병이 진행되더라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조만간 존속법인과 합병비율이 결정되더라도 행명과 은행장 문제가 또 남아있다. 특히 은행장 문제는 두 은행 임직원과 외국인 대주주가 자존심을 걸고 물러서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하고 있어 결전이 예상되고 있다.
국민은행은 우월적 위치에서의 합병이므로 글로벌 베스트 프랙티스에 따라 당연히 김상훈행장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고 주택은행은 다른 것은 다 줄 수 있어도 김정태닫기

게다가 두 은행은 합병 결과 도출되는 정부 지분과 외국인 대주주 지분율을 추산, 서로 자기쪽이 유리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민은행은 언제든지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골드만삭스의 전환사채를 최후의 보루로 삼고 있고 주택은행은 ING의 추가 증자가 물건너간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에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방패막이로 삼고 있다. 주택은행은 계속해서 정부지분이 자기 편임을 주장, 정치적인 해결을 모색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이같은 반목은 결국 합병은행 탄생의 목적을 희석시키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규모 및 여수신면에서 국내에서 독점적 지위의 은행이자 세계 60위권 은행, 외부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규모와 능력을 보유한 은행, 합병 이후 선택과 집중에 따른 가계금융 기업금융 국제금융 등을 탄력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은행 등 두 은행이 합추위를 통해 제시한 합병은행의 비전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계획이었다.
원만히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합병 협상에 대한 내부 직원들의 불안과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지난 31일 금융노조의 금감위 앞 합병반대 시위에서 국민은행 노조 간부 한사람이 자해로 부상을 입는 사태까지 발생, 가뜩이나 어두운 합병전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두 은행의 반목을 부각시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해결을 바라고 있어 정부의 대응이 더더욱 주목된다.
송훈정 기자 hjso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