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위원회가 보험사 구조조정의 잣대가 되고 있는 지급여력 기준을 변경하지 않는 대신 이에 따른 후속조치를 유예해주겠다고 밝히는 등 보험사 구조조정과 관련한 정책에 일관성을 갖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2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보험사 지급여력비율은 현행 방식이 세계 공통의 방법이므로 변경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대신 최근의 자금경색을 고려해 지급여력비율이 기준에 미달한 ‘경영권고대상’ 보험사에 대한 후속조치를 유예해줄 방침이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금감원이 보험사 지급여력제도 개선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보험사 구조조정과 관련 정부의 정책이 혼선을 빚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급여력기준을 변경하는 것과 기준에 따른 경고조치를 유예해 주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냐고 반문하고 있다. 지급여력기준은 국제적 정합성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변경할 수 없다면 그에 따른 후속조치를 유예해주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IMF 이후 보험사 지급여력제도를 국제적 정합성에 맞춰 대폭 강화했다. 당시 국내 현실을 무시한 제도라는 반발에도 불구 당국은 제도시행을 강행했고, 결국 주식시장이 무너지면서 부실보험사를 무더기로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자 보험사 노조가 지급여력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2월 총파업을 결의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실제로 주식시장이 불황을 겪은 지난해의 경우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띄게 하락했고, 일부 보험사의 경우 단지 지급여력비율이 기준에 미달했다는 이유만으로 ‘부실’의 오명을 써야 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 내부에서도 지급여력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고 이를 검토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어긋나고 국제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불가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한일 현대 삼신생명 등 3개 부실생보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방침도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당국은 이들 3사에 대해 공개매각을 추진하되, 한일생명의 경우 쌍용양회에 대한 한도초과 출자자 대출분이 모두 회수되고 지급여력 확충 계획이 제출되면 매각대상에서 제외하겠다며 유동적인 태도를 보인 것.
현대·삼신생명과 한일생명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어 두 회사는 퇴출시키고 한 회사는 상황에 따라 제외시키겠다는 것인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회사의 생사가 걸려있는 구조조정의 정책 기조가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때에 따라 흔들릴 경우 보험사의 경영정상화 자체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이는 자칫하면 업계 전체를 죽이거나 구조조정이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양우 기자 su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