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G는 1조1000억원을 투자하면서 최소 1조4000억원을 정부측에 요구하고 있다. 이유는 현대 금융그룹의 부실이 모두 정부의 관치금융 때문이라는 것이다.
89년 증시안정대책으로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일, 한남투신을 인수하면서 약속한 저리의 자금지원이 무용지물이 된 것(6000억원), 대우사태로 인한 부실채권 문제(8000억원) 등을 모두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다.
만일 외자유치가 무산돼 발생할 지 모르는 국가신인도 하락 등 ‘AIG 쇼크’를 정부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여론압박도 가해지고 있다.
그러나 AIG가 분석한 모든 자료는 현대그룹이 제공한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당연히 현대측에 유리한 입장이 전달될 수밖에 없다. 정부로서도 할 말이 많다. 과거 정부가 때마다 쏟아부었던 증시안정대책이 정부의 고압적인 명령으로만 시행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금융기관들이 원했던 일이었다. 한남투신만 해도 그렇다. 이를 인수하면서 현대투신은 국내 최고의 투신사로 발돋음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대우채권 부실은 국민의 혈세로 충당되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모든 책임을 정부에게만 전가시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AIG의 현대 금융계열사 인수는 AIG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측면이 많다. 최근 AIG는 개발도상국과 아시아권에 진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주 AIG는 이집트의 파라오닉 보험사를 1800만달러(한화 약 205억원)에 인수했고, 중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인수합병의 기회를 찾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한국에서 보험사가 아닌 증권사와 투신사까지 거머쥐게 된다면 범아시아권의 금융기점을 만들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향후 10년내 1조1000억원의 현대 금융그룹에의 투자금액은 증권주 가치상승, 투신사의 순익으로 찾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해석도 있다. 아울러 현대 금융그룹을 거머쥐면서 AIG는 한국의 직접금융 시장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AIG의 요구에 질질 끌려가기 보다 이같은 한국투자의 매력을 떳떳이 제시하고 대범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따지고 보면 AIG가 인수하려는 현대 금융그룹은 1조1000억원이면 싼값이다. ‘시장의 논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AIG가 정부를 끌어들이는 것은 ‘넌센스’다.
궂이 위와같은 부실들을 제거하기를 원한다면 현대그룹이 현대투신 부실해소를 위해 담보로 제공한 1조7000억원어치(당시 평가금액 기준)의 주식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병선 기자 bsmoo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