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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선 연금칼럼] 퇴직연금 낮은 수익률, 문제는 잘못된 ‘넛지’다

윤치선 미래에셋자산운용 지식콘텐츠팀 수석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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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5-01-20 00:00 최종수정 : 2025-01-20 16:52

제대로 된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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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치선 미래에셋자산운용 지식콘텐츠팀 수석매니저

▲ 윤치선 미래에셋자산운용 지식콘텐츠팀 수석매니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3년말 기준으로 전체 퇴직연금의 지난 5년과 10년 간 연 환산 수익률은 각각 2.35%, 2.07%로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다만 이 수익률로 퇴직연금의 성과를 논하는 것은 큰 의미는 없다. 전체 퇴직연금 수익률은 DB형(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이 포함된 수치이기 때문이다. DB형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근속연수와 퇴직 전 임금 수준에 따라 퇴직급여가 결정되므로 운용 수익률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근로자의 상품 선택에 따라서 수익률이 좌우되고, 그 수익률에 의해 퇴직급여액도 영향을 받는 DC형 퇴직연금 수익률은 어떨까? DC형 퇴직연금의 경우 최근 5년과 10년 수익률은 2.56%, 2.26%였다. 전체 퇴직연금 수익률보다는 높지만 그렇다고 우수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투자에 대한 비전문성 혹은 무관심이 문제인 것일까?

이에 대해서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의 본성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인간을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 존재로 본다. 그리고 이런 인간은 몇 가지 심리적인 편향의 존재 때문에 합리적인 투자를 하기 어렵다. DC형 퇴직연금 수익률에 악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심리 편향은 ‘손실회피’다. 손실회피 편향이란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구보다 손실을 회피하고자 하는 욕구를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손실을 싫어한다. 특히 소득이 줄어드는 것은 끔찍하게 싫어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엘 카너먼 교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사람들의 손실회피 정도를 가늠해봤다. “득실 확률이50 대50인데, 100달러의 손실을 볼 수 있다면 최소 얼마의 이득을 올릴 수 있어야 이 도박에 참여하겠는가?”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손실 가능 금액인100달러의2배에 해당하는200달러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몇몇 실험에서 추정된 손실회피율은1.5~2.5배로 나타났다.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에게 손실회피 편향은 원리금보장상품 선호라는 현상으로 발현된다. 장기적으로는 실적배당상품의 수익률이 더 우수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확률 때문에 쉽사리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다. 2023년 기준으로 DC형 퇴직연금에서 원리금보장상품의 비율은 81.9%에 달했다. 참고로 DC형 퇴직연금 원리금보장상품의 장기 연환산 수익률은 5년2.14%, 10년 2.13%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DC형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답 자체는 간단하다. 괜찮은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면 된다. 그간 정부와 자산운용사들의 노력으로 괜찮은 실적배당형 상품이 많아졌다. 대표적인 것이 TDF(Target Date Fund)다. TDF는 은퇴시점에 맞춰 위험자산의 비중을 생애주기 자산배분곡선(Glide Path)에 따라 자동으로 조절하는 글로벌 자산배분 펀드다.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주식 등 위험자산의 비중은 낮추고 채권 등 위험도가 낮은 자산의 비중을 높여 은퇴 자산을 안정적으로 분산투자하는 구조이다.

(미래에셋전략배분TDF2045의 경우 2017년 3월에 설정되었다. 그리고 2024년말 기준 누적수익률은 85.5%에 달한다.(퇴직연금 전용 클래스 펀드 기준) 연환산 복리수익률로 계산하면 8%가 넘는 것이다. 채권비중이 높은 미래에셋전략배분TDF2025라 하더라도 같은 기간 연환산 복리 수익률이 5%가 넘는다. 원리금보장상품 수익률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다른 운용사의 TDF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원리금보장상품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장기수익률이 우수한 실적배당상품들에 퇴직연금을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아무리 외쳐도 투자자들이 움직이지 않는 데에 있다. 앞서 말한 ‘손실회피’ 성향 등 비합리적인 심리적 편향 때문이다.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사실 어느 정도 답이 나와 있다. 심리적인 편향은 심리적인 방법으로 극복하는 것이 정석이다.

201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 미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넛지(Nudge)>라는 책에서 그에 대한 힌트를 제시하고 있다. 방법은 책 제목과 같은 ‘넛지’다. 본래 ‘넛지’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을 가진 말인데,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특정 행동을 유도할 때 주로 사용한다. 즉,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강제하거나 지시하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넛지’다. 세일러 교수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제시했을까? 그는 ‘관성’을 이용하라고 충고했다. 사람들은 한번 정한 결정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심리적 성향을 이용하면 사람들을 올바른 선택으로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방법은 실제로 통했다.

미국은 이 관성을 이용한 ‘넛지’를 통해 퇴직연금 가입자들을 실적배당상품으로 유도했다. 그 것이 디폴트 옵션이다. 그 과정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다. 일단은 퇴직연금 자동가입을 초기값으로 설정하는 것이었다. 즉 근로자가 원하면 퇴직연금에 가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조건이 되는 근로자는 무조건 퇴직연금에 가입시키고 본인이 원하는 빼주는 방식이다. 두 번 째 단계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아닌 TDF 등 괜찮은 실적배당상품으로 유도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근로자에게 디폴트 옵션으로 제공되는 상품을 근로자가 아닌 회사가 고르게 되어 있다. 그리고, 2006년 연금보호법 제정으로 기업이 적격디폴트투자상품(QDIA)을 디폴트옵션으로 설정할 경우 손실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묻지 않는 법적요건도 갖추었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도 큰 법적 부담없이 장기적으로 근로자의 퇴직연금 자산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TDF같은 상품을 디폴트 옵션으로 설정하게 되었다. 현재 미국은 DC형 퇴직연금 거의 대부분이 QDIA를 디폴트옵션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그 중 80% 이상이 TDF이다.

한국에도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의 디폴트 옵션은 미국과 이름만 같고, 형식은 매우 다르다. 한국은 일단 디폴트 옵션에 원리금보장상품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디폴트옵션 상품 중에서 하나를 회사가 아닌 근로자가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 과정도 쉽지가 않다. 일단 디폴트옵션 제도를 적용할지 아닐지에 대한 선택부터 해야 한다. 이후 자신의 위험성향에 따라 초저위험부터 고위험에 이르는 상품 중 한 개를 선택해야 한다. 투자에 대해서 잘 모르는 근로자라면 이 선택이 쉬울 리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원리금보장상품을 포함한 여러 개의 금융 상품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할 때 근로자가 무엇을 주로 고르게 되는 지에 대해서 말이다. 손실회피 성향으로 인해서 원리금보장상품을 주로 선택하게 된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 2분기말 디폴트옵션 선택 현황을 보면 금액 기준으로 볼 때 초저위험 디폴트옵션 상품의 비중이 89.2%였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한국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제도는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낮은 퇴직연금 수익률을 제고하려면 답은 정해져 있다. 인간의 비합리적인 이성을 믿지 말고 제대로 된 ‘넛지’, 제대로 된 ‘디폴트옵션’ 제도를 설정해야 한다. 정부는 최근 ‘2025년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올 해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제도의 개선을 예고한 바 있다. 미국의 사례를 참조하여 성공적인 방향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윤치선 미래에셋자산운용 지식콘텐츠팀 수석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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