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신문이 선정한 2024년 올해의 금융 CEO 카드사 혁신금융 부문에 정태영닫기정태영기사 모아보기 현대카드 부회장이 올랐다. 정 부회장은 최근 일본 3대 신용카드사에 현대카드 인공지능 플랫폼을 수출했다.
그가 지난 10년간 쌓아온 데이터 사업에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카드는 지난달 17일 일본 빅3 신용카드사인 SMCC(Sumitomo Mitsui Card Company)와 '유니버스(UNIVERSE)'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수백억원에 달하며,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소프트웨어 수출이다.
유니버스는 현대카드가 자체 개발한 고객 초개인화 인공지능(AI) 플랫폼이다. 데이터를 정의하고 구조화하는 '태그(Tag)'로 개인의 행동·성향·상태 등을 예측해 고객을 직접 타겟팅할 수 있고, 전 업종 비즈니스에 적용 가능하다.
SMCC는 유니버스 도입으로 회원 개개인의 취향, 결제 패턴, 라이프 스타일 등에 최적화된 경험 가치를 높이고, AI와 데이터 사이언스에 기반한 세밀한 타기팅을 통한 가맹점 판촉 고도화를 진행하는 한편 여신 업무, 고객 상담, 부정사용 감지 등 전사적인 영역에 유니버스의 AI를 도입해 나갈 계획이다.
이번 현대카드의 수출은 대표적인 경제 대국을 대상으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은 기술 도입 과정에서 깐깐한 검증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0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일본 빅3 신용카드사 중 하나인 SMCC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SMCC는 다양한 디지털 혁신을 통해 일본 금융 시장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리딩 기업이다. 지난 2월부터 6개월간 현대카드와 기술 실증(PoC·Proof of Concept)을 거쳐 최종 도입을 결정했다.
일본 시장의 검증을 통과한 만큼 향후 수출 시장 확대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현재 SMCC 계열사뿐만 아니라 해외 금융사들도 유니버스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MCC 관계자는 "철저한 검증 과정을 통해 현대카드가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 분석 및 설계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도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성과엔 '현대카드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했던 정 부회장의 노력이 담겼다.
그는 지난 10년간 카드사 본업 외의 새로운 경쟁력을 키우고자 했다. 당시 네이버, 카카오 등 핀테크사들이 결제업무에 손을 대면서 카드사의 영역이 침범당할 수 있겠다고 전망한 것이다.
실제 간편결제사는 카드사를 맹추격 중이다. 지난 1분기 네이버·카카오페이 등 핀테크사의 거래액(57조6000억원)은 카드사 거래액(290조9000억원)의 20% 수준에 달했다. 이는 전년동기(16.5%)대비 성장세다. 여전히 카드사의 실적이 높지만, 안심할 때는 아니다. 모바일기기 결제가 실물카드 결제 비중을 뛰어넘는 등 간편결제 시장이 점점 커지면서다.
한국은행이 공개한 '2023년 중 국내 지급 결제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모바일기기 결제 규모는 1조4740억원으로 전년보다 10.8% 증가했다.
실물카드 결제 규모는 1조4430억원으로 1.9% 늘어나는 데 그쳤다. 결제 규모나 증가폭에서 모바일기기가 실물카드를 앞선 셈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거래 활용이 급증하면서 간편결제 시장도 급성장하는 추세다. 더욱이 휴대전화를 통한 페이 결제가 늘면서 휴대전화 제조사가 자사 기기에 최적화해 내놓는 삼성·애플페이의 편의성을 카드사가 따라가기 어렵다고 여겨진다.
때문에 간편결제 시장에서 신용카드사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정 부회장이 꺼낸 회심의 카드는 '데이터'였다.
현대카드가 가진 데이터를 통해 기존 금융사에서 '테크 기업'으로 거듭나겠단 포부를 밝힌 것이다.현대카드는 지난 10년간 데이터 사이언스 및 AI 역량 강화에 집중해왔다. 지난해엔 국내 최초로 애플페이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16년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금은 낯설지만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며 현대카드를 카드사에서 디지털 IT 기업으로 변신시키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디지털이라면 행여 뒤떨어질까 무조건 다 하는 게 아니라 판단력을 갖고 우리 페이스대로 추진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현대카드는 '초개인화 서비스'에 집중했다. 고객의 성별·나이·직업·거주지·소비패턴 등을 연결해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한다.
예를 들어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30대 여성이 매일 스타벅스에서 두잔씩 커피를 산다면, 스타벅스 할인·적립과 교통비 할인을 지원하는 카드 상품을 추천해주는 식이다. 또 비슷한 환경을 가진 고객들이 주로 타는 차종과 선호 옵션 등을 추려 제안할 수 있다.
정 부회장은 이번 유니버스 수출로 '카드사도 데이터 사업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만큼 관련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카드사에서 테크기업으로서의 전환은 이미 증명됐다. 이제는 고객들을 놀라게 할 차례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지금까지 금융사들이 진행해 온 전통 금융사업 및 금융 시스템 등을 통한 해외 진출이 아닌 테크 기반의 해외 진출이라는 점 및 전통 금융사에서 테크기업으로의 업의 전환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을 시작으로 북미·유럽·중동·아시아 등 각국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협업 문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데이터 사이언스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확장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하랑 한국금융신문 기자 ra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