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LG화학이 바이오 사업에 진출하고 4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다. 지난 2020년 바이오·제약 투자 붐이 일어났을 때도 LG화학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단기적 성과 창출에 유리한 바이오시밀러 기업들과 달리 신약 개발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수차례 상업적 실패와 시행착오 끝에 LG화학은 올해 미국 아베오 인수라는 대규모 투자를 계기로 ‘글로벌 신약 회사 도약’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나왔다.
LG화학에 따르면 지난해 이 회사는 생명과학 부문 R&D(연구개발)에 약 2760억원을 투입했다. 석유화학(2160억원), 첨단소재(2040억원) 사업보다 많은 금액이다.
시설투자 비용까지 합치면 생명과학에만 4000억원을 쏟아부었다. LG화학으로 합병되기 직전인 2016년 옛 LG생명과학 R&D·시설투자가 1300억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3배가 넘는 규모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LG화학은 올해부터 오는 2027년까지 생명과학 R&D에 매년 3300억원씩 총 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런 투자 로드맵만 살펴보면 이 회사가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를 자회사로 독립시킨 이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으려는 분야가 바이오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옛 LG생명과학은 ‘바이오 사관학교’라고 불렸다. 국내 바이오·제약 벤처기업을 설립한 CEO(최고경영자)를 다수 배출해 붙은 별명이다. 속내를 들여다 보면 자랑스러운 별명만은 아니다. 결국 핵심 인재를 회사가 끌어안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 그간 LG그룹 바이오 사업은 성공보다 실패에 가까웠다.
LG는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바이오 사업에 진출했다. 1961년 의약품 제조업 허가를 획득하고, 1970년대 본격 투자를 진행해 1984년 LG화학 의약품사업부를 신설했다. 이후 그룹 차원에서 꾸준한 지원을 받았고 2002년 LG생명과학을 출범시켰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1호 신약인 항생제 ‘팩티브’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팩티브는 1991년 연구에 착수해 2003년 미국 FDA(식품의약품국)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팩티브는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이어 LG생명과학이 2012년 출시한 당뇨치료제 제미글로가 국내 신약 최초로 연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는 성공을 거뒀지만, 판매 대부분이 국내에 국한돼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 신약이 우수한 효과를 가졌지만 정작 글로벌 영업망 부재로 큰 수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진단이다.
이후 회사는 필러 등 돈이 되는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지만 “단기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아이템에 집중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2017년 LG생명과학은 LG화학 사업부로 다시 합병됐다. 장기적 관점에서 글로벌 신약 개발 전략을 다시 짜겠다는 의지였다.
생명과학을 흡수한 지 6년 만인 올초 LG화학은 미국 아베오 파마슈티컬스 M&A(인수·합병)을 완료하며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아베오는 2021년 미 FDA 승인을 받은 신장암 치료제 ‘포티브다’를 판매하고 있다. 임상 단계에 있는 두경부암·고형암 치료제 등 3종의 파이프라인도 보유하고 있다.
LG화학이 아베오를 사들인 금액은 7000억원이다. 너무 비싼 금액을 투입했다는 평가도 있다. 아베오는 지난해 매출 1300억원에 영업손실을 본 기업이다. LG화학은 포티브다 판매 확대로 2027년 매출 4000억~5000억원에 영업이익률 50%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금 회수에 자신감을 보였다.
아베오 인수에는 미국 현지 영업망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간 LG화학은 신약 개발에 성공하고도 판매 노하우 부족으로 상업화엔 실패했기 때문이다.
LG화학은 지난 1월 아베오 인수 완료와 관련해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생명과학사업부는 초기연구·생산공정 개발에 강점이 있고, 아베오는 미국시장 임상개발과 판매 노하우가 있다”고 강조했다.
LG화학은 그간 자체적으로 투자한 신약 개발 성과도 조만간 내겠다는 목표다. 신학철 부회장은 지난 2월 CEO 인베스터데이를 통해 “2030년까지 23개 임상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이 가운데 2개 이상 혁신 신약을 미국·유럽에서 상업화하겠다”며 “글로벌 신약회사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LG화학은 통풍치료제 티굴릭소스타트와 지방간 치료제에 대한 글로벌 임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 글로벌 신약으로 2030년 매출 1조원을 거두겠다는 목표다. 지난해 기준 생명과학사업부 매출이 9000억원 수준이었으니, 신약을 통해 2배 이상 외형 성장을 거두겠다는 것이다.
곽호룡 기자 horr@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