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전용 사모펀드(PEF, Private Equity Fund) 펀드수가 줄었지만 약정액이 늘어난 배경을 보면 대형 GP(General Partner, 운용사) 중심의 ‘싹쓸이’ 경향이 꼽힌다.
대형사들은 그동안 쌓은 풍부한 드라이파우더(Dry powder, 미집행 약정액) 자금 실탄을 소진할 수 있는 투자 탐색에 집중하고 있다.
금리 정점론에도 장기간 고금리가 유지된다는 전망 속에서 인수금융 조달 비용 부담이 큰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경력 있는’ 대형 GP들은 보수적 기조의 LP(기관투자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2023년 3월 말 기준 기관전용 사모펀드 통합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올해 들어 석 달간 신설된 기관전용 PEF 약정액은 총 5조162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3조9336억원) 대비 30%가량 증가한 규모다.
반면 같은 기간 올해 신설된 PEF 개수는 36개로, 전년 동기(49개) 대비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전체적인 PEF 약정액 규모가 커졌다는 것은 시장 상황이 다소나마 나아졌다는 뜻일 수 있지만, 펀드 증가폭이 축소되면서 출자액이 늘어난 것은 대형 펀드에 자금 집중도가 높아졌다고 풀이할 수 있다.
개별 PEF 별로 살펴보면, 올해 들어 2023년 1분기 기준 스틱인베스트먼트가 1조2800억원 규모 ‘스틱오퍼튜니티 3호’ 대형 펀드를 조성했다.
또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6680억원), UCK파트너스(6360억원)도 상반기 대형 펀딩 건으로 분류할 수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펀드레이징(자금모집)에서 유동성 특수를 누렸던 시기가 지났고, 투자는 대형 펀드 위주로 집행되는 모습”이라며 “전반적으로 올 하반기 기관 콘테스트에 더욱 주력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약정액 기준 국내 PEF 운용사 순위를 살펴보면, 2023년 3월 말 기준 한앤컴퍼니가 10조9761억원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위는 역시 10조원대 약정액의 MBK파트너스(10조7284억원)가 이름을 올렸다. 이어 3위는 스틱인베스트먼트(6조2510억원)가 추격하고 있다.
4위 IMM PE(프라이빗에쿼티)(5조5323억원), 5위 IMM인베스트먼트(5조1702억원)는 5조원대 약정액을 기록했다.
기관전용 PEF 시장 총 약정액은 2023년 3월 말 기준 130조972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말과 비교하면 4% 가량 늘어난 수치다.
한앤컴퍼니(회장 윤여을, 대표 한상원)는 약정액 1위 하우스로 한온시스템, 케이카, 쌍용 C&E 등에 투자해서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공개매수로 레이저 미용 의료기기 전문기업인 루트로닉 인수에 나섰다.
MBK파트너스(회장 김병주닫기김병주기사 모아보기)는 2022년 구강스캐너 제조사인 메디트(2조4600억원), 2023년 국내 1위 임플란트 업체 오스템임플란트(2조6000억원) 등 자금력을 발판으로 연달아 대규모 투자 집행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2023년 국내 1위 연성동박적층필름(FCCL) 제조기업인 넥스플렉스(5300억원)도 인수했다. 또 MBK는 5월 블랙록, 카타르투자청(QIA)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을 통해 SK온에 8억 달러(1조500억원) 투자를 확정짓기도 했다.
UCK파트너스도 2023년 3월 6300억원 규모 블라인드 펀드를 결성했다. MBK파트너스에 ‘빅딜(Big deal)’로 메디트 매각을 마쳤고, MBK-UCK 컨소시엄은 오스템임플란트 인수 맞손을 잡았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올해 ‘스틱오퍼튜니티 3호’ 초대형 펀드를 결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첫 투자처로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기업 오케스트로를 선정했다.
IMM PE는 최근 2023년 6월 말 앵커 출자자로 꼽히는 국민연금의 8000억원 규모 국내 사모투자 분야 PEF 위탁운용사에 맥쿼리자산운용, 한앤컴퍼니와 함께 선정됐다.
곳간이 찬 기관전용 PEF들은 투자 준비 태세다.
경영권 인수 목적의 바이아웃(Buy-out) 뿐만 아니라, 지분 투자, 사모대출까지 권역을 넓힐 수 있다.
5~10년 약정기간 내 매각해야 하는 사모펀드와, 드라이파우더 자금 소진이 필요한 사모펀드 간 이해관계가 맞닿은 ‘세컨더리 펀드(Secondary Fund)’도 실행되고 있다.
올해 PEF들의 엑시트(Exit, 투자금 회수) 매물이 M&A를 통해 ‘새 주인’을 찾아갈 수 있을 지도 주목된다.
관심 업종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ESG(2차전지, 전기차, 리사이클링, 신재생에너지) ▲바이오 헬스케어(건강기능식품, API(원료의약품), 의료기기)가 꼽힌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은 “M&A는 경제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에 둔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해당 시점이 매력적 밸류에이션에 따른 기업인수 최적 기회가 도래하는 시기”라며 “현금 보유 기업들은 시장의 전반적 밸류에이션 하락을 중요한 기회로 인식하고 아웃바운드 딜(Outbound deal)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제시했다.
정선은 기자 bravebamb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