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열린 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양종희 KB금융지주 부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 회장,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사진=금융위원회(2023.3.31)
이미지 확대보기지난해 연말부터 금융지주 수장으로 새 인물이 급부상하며 금융권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윤종규닫기윤종규기사 모아보기 KB금융지주 회장도 4연임을 포기하고 용퇴를 결정하는 등 주요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 잇달아 교체되는 중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주인 없는 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금융회사 CEO 장기집권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 회장은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의 차기 회장 1차 숏리스트(최종 후보군) 6명 확정을 앞두고 지난주 회추위에 연임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윤 회장은 오는 11월 20일 3번째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윤 회장은 은행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싸고 당시 회장과 행장이 갈등을 벌인 ‘KB 사태’가 불거진 직후인 지난 2014년 11월 취임했다. 회장과 은행장을 3년간 겸직하며 내분 사태를 조기에 수습했다.
이와 함께 적극적인 인수합병(M&A)과 실적 개선으로 KB금융을 리딩금융그룹으로 도약시키는 등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회장은 2015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을 시작으로 2016년 현대증권(KB증권), 2020년 푸르덴셜생명(현KB라이프생명) 등 M&A를 주도하며 비은행 사업을 강화했다.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결과 KB금융의 수익 규모는 윤 회장 취임 후 8년 사이 세 배 넘게 성장했다. KB금융은 2017년 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3조원대 순이익을 달성한 뒤 2021년부터 2년 연속 4조원대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는 상반기에만 3조원에 육박하는 역대급 실적을 달성하며 리딩금융 입지를 공고히 했다.
윤 회장은 2017년과 2020년 11월 각각 연임과 재연임에 성공했다. 올해로 회장에 오른 지 10년 차가 됐다. 윤 회장은 최근 회추위원들에게 “그룹의 새로운 미래와 변화를 위해 KB금융그룹의 바톤을 넘길 때가 됐다”며 “KB금융그룹이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리딩금융그룹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 역량 있는 분이 후임 회장에 선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윤 회장의 용퇴 배경으로 금융당국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정부와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회장 장기집권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온 만큼 윤 회장이 4연임에 도전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앞서 임기가 만료된 주요 금융지주 회장은 모두 교체가 이뤄졌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5대 금융지주 중 3곳의 수장이 모두 바뀌었다. 3연임이 유력했던 조용병닫기조용병기사 모아보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작년 말 사모펀드 불완전 사태 등의 책임을 지고 연임 대신 용퇴를 결정했다. 이에 진옥동닫기진옥동기사 모아보기 당시 신한은행장이 차기 회장으로 선임됐다.
우리금융도 지난 2월 초 손태승닫기손태승기사 모아보기 전 회장의 후임으로 임종룡닫기임종룡기사 모아보기 전 금융위원장을 추천했다. 손 전 회장은 라임펀드 사태 관련 금융당국 중징계를 받은 뒤 “금융권의 세대교체 흐름에 동참하겠다”며 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임 회장은 지난 3월 공식 취임했다.
농협금융은 지난해 12월 손병환닫기손병환기사 모아보기 회장의 후임으로 이석준닫기이석준기사 모아보기 전 국무조정실장을 선임했다. 지방금융지주인 BNK금융도 지난 1월 빈대인닫기빈대인기사 모아보기 전 부산은행장을 차기 회장으로 선정했다. 전임 김지완닫기김지완기사 모아보기 회장은 지난해 11월 초 조기 사임을 결정했다.
당초 금융권에서는 각 금융지주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고 있는 데다 그룹 후계 구도 등을 고려했을 때 임기가 만료된 회장들의 연임을 유력하게 전망해왔다. 하지만 신한금융을 시작으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금융권의 장기집권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정부가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원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윤 정부 들어 금융당국 수장들은 잇달아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을 압박해왔다. 특히 손 전 회장의 연임을 겨냥한 발언이 이어지면서 관치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11월 중징계를 받은 손 전 회장이 소송을 통해 연임을 시도할 가능성에 대해 “당사자께서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융권은 이를 두고 손 전 회장의 연임에 대한 ‘경고성 발언’이라고 봤다.
이 원장은 같은달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소집해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의 선임이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라며 “CEO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승계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신한금융과 NH농협금융, 우리금융에 이어 KB금융도 기존 회장이 물러나면서 금융권의 연임 관행이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이 금융지주 지배구조 투명성을 강조하고 금융당국도 관련 제도 개선에 나서면서 금융지주 CEO들이 우호 세력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통해 임기를 수차례 연장하는 행태는 앞으로 보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말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은행은 국방보다도 중요한 공공재적 시스템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설립 대신 인허가 형태로 운영 중이고 과거 위기 시 은행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조 조정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공정하고 투명한 은행의 거버넌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현재 CEO 선임 및 경영승계절차 등 금융사 지배구조 모범관행(Best Practice)을 마련하고 있다. ‘지배구조 모범관행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TF)’ 논의를 거쳐 올 하반기 중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최근 경영승계절차를 개시한 KB금융에도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작년 말과 올해 초 여러 지배구조 이슈 후 KB가 첫 이벤트를 맞는 만큼 업계에 선진적인, 선도적인 선례를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라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절차적인 개선 방안들은 검토·고려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지난 6월 말에도 “KB금융 회장 승계 절차가 후보들에 대한 공평한 기회 제공 등 합리적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며 “업계 모범을 쌓는 절차가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KB금융 회추위는 지난달 17일과 19일 양일 간담회를 열고 선정 절차의 합리적인 운영과 후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 등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이를 통해 승계 절차를 정교하게 개선하고 공정성을 더욱 확보하기로 했다. 금융권에서는 KB금융의 회장 선임절차 강화 결정에도 금융당국의 입김이 일부 반영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KB금융 회추위는 이날 회추위를 열고 1차 숏리스트(최종 후보군) 6명을 추린다. 오는 29일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1차 인터뷰 및 심사를 거쳐 2차 숏리스트를 3명으로 압축할 예정이다. 이후 다음달 8일 3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2차 인터뷰를 통한 심층 평가를 실시하고 투표를 통해 최종 후보자 1인을 확정한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