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14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 앞에서 '금융공공성 사수를 위한 9·16 총파업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이미지 확대보기시중은행 노조들이 속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의 전면 총파업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노사 대표(금융노조위원장-금융사용자협의회장)간 막판 교섭도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로 결렬되면서다. 평균 연봉이 1억원을 웃도는 금융노조의 파업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인 만큼 실제 파업 참여율은 높지 않아 영업점 혼란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노조의 파업 가결 이후 현재까지 금융노조와 사측(금융산업협의회)은 주요 쟁점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앞서 금융노조는 지난달 19일 조합원 대상 쟁의행위 찬반 투표에서 투표율 79.27%, 93.4%의 찬성률(투표 조합원 수 기준)로 총파업을 가결했다. 37개 지부 전국 사업장에서 총 7만1958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찬성이 6만7207표를 얻었다.
사측인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금융노조는 앞서 네 차례에 걸친 교섭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지난 7월 6일 협상 결렬 이후 고용노동부 산하 중앙노동위원회로 안건이 넘어갔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해 같은달 26일 ‘조정 중지’ 결정이 내려졌다. 금융노조는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 단체협약 개정 요구안 34개를 요구했지만 사측에서 해당 수용 요구안 모두에 대해 거부 의사를 전했다고 밝혔다.
금융노조의 요구안에는 ▲영업점 폐쇄 중단 및 적정인력 유지 ▲금융공공기관의 자율교섭 보장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 개선 ▲주 36시간 4.5일제 실시 등 근로시간 단축 ▲재택근무 시 사생활 보호와 근로조건의 결정 ▲이사회 참관 등 경영참여 보장 ▲남성 육아휴직 1년 의무화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3개월 확대 등 성평등 및 모성보호 확대 ▲조합활동으로 인한 집행유예 이하의 처분 시 해고 제한 등이 담겼다.
특히 노사는 임금 인상률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금융노조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서 6.1% 임금 인상을 제시했으나 사측은 임금인상률 1.4%를 제시했다.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했을 때 낮은 임금인상률로 인한 실질적인 임금 삭감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에도 금융노조는 정규직 임금 4.3% 인상을 요구했고, 사측은 1.2% 인상안을 제시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당시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노조는 총파업을 예고했으나 추가 협상을 통해 2.4% 인상에 합의하면서 총파업은 면했다.
주 36시간 근무 역시 노사 간 입장 차가 큰 쟁점이다. 금융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은행 영업시간이 줄어들면 소비자 불편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현재 시중은행 영업점은 영업시간을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로 1시간 단축 운영하고 있다. 금융권 노사가 지난해 7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였던 시중은행 영업점 영업시간을 줄이기로 합의하면서다.
은행 영업시간을 코로나19 이전으로 되돌리려면 노사 합의가 선행돼야 하는데 영업시간 단축 논의 당시 기준으로 삼았던 ‘실내마스크 착용’이 아직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은행들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상황에서도 단축된 영업시간을 유지하고 있다.
전날 오후에도 노사 대표 간 교섭이 이뤄졌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결렬됐다. 금융노조는 임금 인상률을 당초 제시했던 6.1%에서 한국은행 물가 상승률 전망치인 5.2%로 낮췄다. 근로시간 단축 요구의 경우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 근무를 한정된 직군에 한해 1년간 시범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금융노조가 요구 수위를 낮춘 건 실제 파업 참여율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금융노조에는 시중은행과 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등의 노조원 약 10만명이 소속돼 있다. 하지만 일부 시중은행 노조에서 사실상 불참을 결정하는 등 실제 파업 참여율은 높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은행과 NH농협 노조는 총파업에 노조 간부급만 참석할 예정이다. 대부분 직원은 정상 근무한다.
이에 따라 파업 당일 은행 업무가 마비되는 등 영업에 큰 차질이 빚어지는 사태는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업계에서는 15일부터 접수가 시작된 안심전환대출과 관련해 고객 불편이 있을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금융노조는 최소 인력이 남아 있는 만큼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홍배 금융노조위원장은 “조합원들이 대부분 부지점장 미만이라 점포 문을 닫고 고객 응대가 전혀 안되는 점포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일부 은행의 경우 안심전환대출 상담이 사실상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2016년 총파업 당시에도 시중은행 참가 인원은 1만800여명으로 전체 조합원의 15%에 그쳤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파업 참가율은 2.8%에 불과했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참여율은 상대적으로 높을 전망이다. 기업은행 노조는 공공기관 혁신안에 반발하고 있고 산업은행의 경우 부산 이전을 두고 노사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이번 총파업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은행원들이 소비자 불편은 외면하면서 근무시간 단축과 임금 상승을 요구하는 자기 잇속만 챙기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주요 시중은행 직원 평균 연봉이 1억원에 달하는 등 기본적인 임금 수준이 높고, 금리 인상기 고객들의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지나친 ‘밥그릇 지키기’ 파업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KB국민은행의 평균 연봉은 1억1200만원, 신한은행 1억700만원, 하나은행 1억600만원, 우리은행 9700만원이었다.
주요 은행 직원의 횡령 사건, 외화 송금 이상 거래 등 잇따른 사고로 은행권이 사회적인 비판을 받고 있는 점도 파업에 부담이다. 올해 상반기 4대 은행의 순이익은 8조96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노조 측은 한 국책은행 조합원들의 평균 연봉을 확인한 결과 7200만원에 미달하고, 다른 업종의 평균 임금인상률과 비교했을 때 금융권 임금인상률이 크지 않은 편이라고 해명했지만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극적으로 노사 협상이 타결되지 않는다면 금융노조는 약 6년 만에 총파업을 벌이게 된다. 금융노조는 2016년 9월 성과연봉제 도입 반대와 관치금융 철폐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나선 바 있다.
금융노조는 16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에서 총파업 집회를 열고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인 삼각지역까지 행진할 계획이다. 경찰에 신고된 집회 인원은 2만명이다. 금융노조는 1차 파업을 이후에도 합의가 안 되면 오는 30일 2차 파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박 위원장은 “지금은 사용자와 정부가 동시에 답을 내놔야 하고, 그럴 경우에는 파업을 연기하거나 취소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