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금고지기는 전국 시금고 중 최대 규모인 서울시 예산을 굴리면서 각종 유무형의 이득을 취할 수 있어 일찌감치 은행 간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 자리다. 이번에 서울시 1, 2금고 은행으로 선정된 신한은행은 내년 1월1일부터 2026년 12월31일까지 4년간 서울시금고를 운영하게 된다. 서울시 예산과 기금 등을 관리하고 세금 등 각종 세입금 수납과 세출금 지급, 현금 수납·지급, 유가증권 출납·보관, 유휴자금 보관·관리 업무 등을 맡는다.
신한은행은 우선 최대 지자체의 '금고지기' 명성을 이어가게 됐다. 서울시금고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금고 중 최대 규모인 데다 상징성도 커 은행들이 가장 탐내는 기관영업 중 하나다. 서울시의 올해 총예산(일반회계+특별회계)은 44조2190억원, 기금 규모는 3조5000억원이다. 한해 운용 규모만 48조원에 달한다.
예산 관리를 통한 수수료 이익을 낼 수 있을뿐 아니라 신용도가 높은 공무원과 가족을 비롯한 산하기관 임직원 등 우량 고객 유치와 시·군·구청사 대상 자사 브랜드 홍보 효과 등도 얻을 수 있다. 이와 함께 각종 서울시 사업유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고 향후 25개 자치구 금고 운영권 확보 경쟁에서도 유리해진다는 이점도 있다.
이 때문에 복수 은행 체제를 처음 시도한 직전 시금고 입찰에서는 은행 간 과당경쟁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한은행은 2018년 서울시 금고 지정 입찰 과정에서 전산시스템 구축비용으로 1000억원을 제시했다가 기관경고와 과태료 21억3110만원을 부과받았다.
당시 금감원은 해당 전산 시스템 구축비용 중 393억원은 금고 운영 계약을 이행하는데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사항으로, 서울시에 제공한 재산상 이익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서울시 금고 유치전을 총괄한 위성호닫기위성호기사 모아보기 당시 신한은행장(현 흥국생명 부회장)에게 주의적 경고(상당)를 통보했다.
은행들은 지자체 금고로 선정되기 위해 협력사업비 명목으로 출연금을 약정한다. 윤창현닫기윤창현기사 모아보기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지자체 금고 출연금은 총 1조864억원에 달한다.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출연금 논란이 일자 은행업 감독 규정과 지자체 조례 등이 손질된 상태다. 은행들의 과도한 출연금 지출이 비용부담을 불러오고 향후 대출금리 상승 등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되거나 주주 이익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이번에도 출연금 규모로 승부가 갈릴 것이라고 예상해왔다. 입찰 참여 은행들의 신용도나 재무구조 안정성이 모두 양호해 점수 차가 유의미하게 벌어지기 어렵고 신설된 항목의 변별력도 크지 않아 결국 금리와 출연금 규모가 당락을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입찰전에서 승부를 가른 핵심 요인으로는 ‘디지털 역량’이 꼽힌다. 서울시는 올해 평가항목에서 ‘협력사업계획(출연금)’ 평가 배점을 4점에서 2점으로 줄이고 대신 ‘서울시에 대한 대출·예금 금리 배점’을 18점에서 20점으로 높였다. ‘관내 무인점포·현금자동인출기(ATM) 설치 대수’와 함께 ‘녹색금융 이행실적’도 새 평가 지표로 추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48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관리한다 해도 출연료나 전산 개발 및 지점 유지 비용 등을 감안하면 운용을 통해 얻는 수익이나 금전적인 이익은 실제로 크지 않다”며 “은행은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한 만큼 서울시금고를 관리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와 신뢰도 제고 측면에서 더 큰 의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