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경 신세계그룹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정유경 총괄사장은 10년 전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 만들기를 목표로 세웠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아르마니, 셀린느 등 다수의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를 수입 판매하고 있지만 자체 명품 브랜드는 없다.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인터를 명품 수입 유통 회사에서 자체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로 도약하자는 청사진 아래 10년 전부터 사업을 구상했다. 이후 2015년 유서 깊은 프랑스 패션하우스 폴 뽀아레의 상표권을 인수하며 꿈을 구체화했다. 그리고 올해 3월 뽀아레의 상표권은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로 시장에 나오게 됐다.
뽀아레 파우더 밤 팔레트. / 사진제공 = 신세계인터내셔날
이미지 확대보기정유경 총괄사장의 ‘한국 대표 명품 만들기’ 계획의 시작은 왜 화장품일까. 그 이유는 폴 포아레의 브랜드 역사와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찾을 수 있다.
1900년대 초 ‘패션의 왕’이라 불렸던 디자이너 폴 포아레는 패션브랜드로는 세계 최초로 향수를 출시했었다. 정 총괄사장은 이런 역사를 갖고 있는 브랜드와 신세계인터가 강점을 보이고 있는 화장품 부문과의 시너지가 가장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폴 포아레의 브랜드 헤리티지와 자사의 역량을 돌아봤을 때 화장품 부문의 시너지가 가장 잘 나타날 것으로 판단했다”며 “전 세계 최초로 향수를 출시했던 혁신의 전통을 회사 강점과 엮어보려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세계인터내셔날의 화장품 사업은 날로 성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상반기 매출액은 6826억원, 영업이익은 478억원으로 각각 전년동기대비 11.8%, 407.7% 성장하며 사상 최고 반기 실적을 냈다. 특히 화장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4.6% 상승하며 실적을 견인했다.
2012년 불과 19억원이었던 신세계인터의 화장품 매출은 지난해 3292억원으로 대폭 성장했다. 영업이익에서 화장품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79% 수준에서 2019년 81%, 2020년 92.6%로 꾸준히 증가했다. 화장품 부문이 신세계인터의 전반적인 수익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정유경 총괄사장은 이전부터 화장품 사업에 집중하며 신세계인터의 미래 먹거리 발굴에 집중했다. 정 총괄사장은 “미래 성장동력이 될 화장품사업을 키워야 한다”는 의지를 나타내며 패션부문에 편중돼있던 사업구조를 뷰티, 온라인몰 등으로 다각화했다.
정 총괄사장은 2012년 비디비치 인수를 시작으로 바이레도, 산타마리아노벨라 등 럭셔리 수입 화장품의 판권을 가져왔다. 연작, 로이비, 오노마등 자체 경쟁력을 키울수 있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의 화장품 브랜드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화장품을 앞세운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화장품이 패션보다 이익 기여도도 높고 이제는 신세계인터의 주성장 동력으로 자리잡았다”고 밝혔다.
뽀아레 신세계 강남점 매장. / 사진제공 = 신세계인터내셔날
이미지 확대보기뽀아레는 최상위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라는 타이틀답게 가격대가 높게 형성되어 있다. 고객들이 비교적 저렴하게 브랜드를 접할 수 있는 립스틱도 8만원 이상이며 크림 제품 가격은 최대 72만원에 달한다. 주요 타깃층도 ‘명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층’으로 잡았다.
신세계인터는 가격의 허들 때문에 론칭 전 시장조사 때 2030세대에게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할 거라 추측했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신세계 본점에 입점한 뽀아레의 첫 번째 매장은 목표 매출을 160% 달성하고 있는데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2030 고객이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MZ세대의 명품 선호 현상에 따른 직접적 수혜를 받고 있는 셈이다.
지난 8월 오픈한 신세계 강남점 뽀아레 2호 매장은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시킬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 강남점은 명품 소비의 큰 손으로 부상한 2030 영리치 고객이 많아 브랜드 인지도와 매출을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중장년층에서의 인기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MZ세대에 비해 새로운 브랜드 인지 속도는 느리지만 경제력은 월등하기 때문이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금 베이비부머 세대는 예년의 시니어들과 달리 경제력이 있고 개인 관리를 위해 돈도 아낌없이 쓴다”며 “소비자가 새로운 화장품 브랜드의 기능적 효과를 인정하게 되면 그 이후의 매출과 브랜드 가치는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뽀아레 인퓨지옹 데네르지. / 사진제공 = S.I. VILLAGE 홈페이지
뽀아레는 출시 계획을 세울 때부터 내수를 위한 브랜드가 아닌 전 세계에 한국을 빛낼 수 있는 글로벌 브랜드로 준비했다. 그래서 론칭 전부터 국내와 국외 사업을 동시에 준비했다. 국내 론칭 당시에도 유럽 화장품 인증(CPNP) 절차를 모두 완료한 상태였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자체 개발한 브랜드에 대해 국내와 해외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뽀아레를 키우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뷰티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에 매장을 오픈하기 위해 협의 중이며 프랑스의 경우 뽀아레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아 내년에는 매장을 오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럭셔리 색조 화장품의 수요가 많은 중동과 최고급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중국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국내 화장품 브랜드가 보통 중국을 먼저 진출한 후 미주·유럽권으로 사세를 넓혀가는 것에 반해 뽀아레는 순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신세계인터는 그 이유로 ‘폴 포아레’의 서구권 브랜드 파워를 꼽았다.
신세계인터 관계자는 “폴 포아레는 이미 서구권에서 인지도가 높고 특히 유럽에서는 이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며 “이미 유럽 내에서 명품 브랜드라는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아시아 시장 진출 과정 없이 바로 프랑스와 미국과 같은 화장품의 선진국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지인 기자 helena@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