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 드라마, 관광, 음악, 음식에 이어 한류 열풍이 한국어에까지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고무적인 현실에도 안으로는 우리말이 외국어로 범벅이 되어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 한 문장에서 외국어와 외래어가 너무 많아 순수한 우리말은 조사나 서술어 외에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세계화로 우리말이 풍부해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말과 글은 정체성이라는 면에서 우리말을 잘 가꾸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어문화원연합회가 벌이고 있는 ‘쉬운 우리말 쓰기’는 한국어를 더욱 아름답게 할 것이다. 외국어로 된 용어들을 우리말로 풀어본다. 편집자 주
신문에서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새로운 휴대전화 제품을 ‘언팩’한다는 기사를 가끔 보게 된다. 세계적 기업이다 보니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기 위해 세계 공용어인 영어식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나 언론이 이를 인용할 때는 쉬운 우리말로 보도하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팩’ 하면 얼굴에 붙이는 팩이 먼저 떠오른다.
‘언팩’이라는 말만 들었을 땐 팩이 얼었다는 뜻인가라는 전혀 엉뚱한 추측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언팩(unpack)’이란 ‘꺼내다, 풀다, 분석하다’는 의미다. 영어에서 ‘un’이라는 접두사가 뒷말의 반대를 의미하기 때문에 ‘pack’은 ‘싸다’, ‘포장하다’는 뜻이니까 ‘언팩’은 ‘푼다’는 의미다. 국립국어원의 순화용어로는 ‘풀기’라고 돼 있다.
그런데 ‘언팩’이란 기업들이 새 제품을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한다는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다. 국어원은 ‘언팩 행사’를 쉬운 우리말로 ‘신제품 공개행사’라고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언팩’은 ‘공개’ 또는 ‘신제품 공개’로, ‘휴대전화 언팩’은 ‘휴대전화 (신제품) 공개’로 하면 어떨까. 그래도 의미가 잘 통하지 않으면 설명을 붙여 ‘휴대전화 ◯◯◯◯ 공개’ 또는 ‘휴대전화 ◯◯◯◯ 첫 공개’, ‘휴대전화 신제품 ◯◯◯◯ 공개’ 등의 방식으로 하면 될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요즘 물건을 사고 난 뒤 이를 ‘언박싱’한다며 동영상을 올려놓은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여기서 ‘언박싱(unboxing)’은 ‘(상자) 개봉’ 또는 ‘상자 개봉을 기록하는 개봉기’라는 우리말로 다듬어져 있다. ‘휴대전화 언박싱’은 ‘휴대전화 개봉’ 또는 ‘휴대전화 개봉기’로 쓰는 게 좋겠다.
※ 한국금융신문은 국어문화원연합회와 쉬운 우리말 쓰기 운동을 함께 합니다.
황인석 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