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사진=각 사
이미지 확대보기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사업환경 변곡점의 시대가 기업의 소통 전략도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올해 들어 7번 자사 사업장을 점검했다. △1월 삼성전자 브라질 마나우스·캄피나스 법인 △3월 구미 스마트폰 공장 △6월 수원 반도체연구소 △6월 수원 생활가전사업부 △7월 수원 사내벤처 C랩 등이다.
이 부회장은 경영진과 전략회의를 마치고 직접 현장에서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심심치 않게 마련했다.
이 부회장은 주로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모습도 포착됐는데 이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이 때문인지 이 부회장이 배식을 위해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거나 직원들과 찍은 ‘셀카’가 SNS 상에서 공유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자신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여전히 계속 되고 있음에도 현장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18년 구속 출소 후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모습과 대비되는 행보다.
이 부회장은 ‘현장 경영’을 통해 “흔들림 없이 도전해야 된다, 미래 기술을 얼마나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생존이 좌우되는 가혹한 위기 상황”이라는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는데 이 역시 과거엔 볼 수 없었던 오너의 ‘생생한 목소리’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최태원 회장은 체면 벗어던지고 유튜브 형식으로 제작된 사내방송에 직접 출연하고 있다.
최 회장은 방송에서 양은냄비에 끓인 라면을 먹거나 삼행시를 짓는다.
SK가 매진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 측정’을 몸으로 표현하라는 질문을 받고는 어찌할 바 모르는 모습도 가감없이 보여준다.
방송 제목은 인기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이름을 따 ‘최태원 클라쓰’라고 붙였다. 모두 20·30대 젊은 직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함이다. 이들에게 그룹 미래 구상이 발표되는 ‘SK이천포럼’을 홍보하기 위해 최 회장이 직접 나선 것이다.
최 회장은 앞서 이천포럼 홍보전략을 논의하는 직원 회의에 등장해 “직접 유튜브를 통해 홍보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최 회장이 직원들과 소통을 강화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엔 100번의 ‘행복토크’를 통해 직원들과 만나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회장님 훈화 말씀’을 듣던 신년회 풍경도 바꿨다. SK는 올해 신년회에서 최 회장 등 경영진이 객석으로 물러났다. 대신 무대에는 외부 활동가나 신입사원 등이 나와 의견을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의선 부회장과 구광모 회장은 격식에서 탈피한 ‘실용주의’ 경영을 추구한다.
아버지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경영전면에 나선 정 부회장은 작년 10월 직원과 ‘타운홀 미팅’을 진행하는 등 소통 접점을 늘리고 있다.
정 부회장은 “메일에 파워포인트를 넣지 않아도 된다, 빠르게 뜻만 전달되면 된다”며 보고 체계의 효율화를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실무자에게 전화나 대면으로 직접 물어보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기존 체계를 흔드는 방식이기에 초기에는 부서간 갈등도 있었다. 지금은 수기 결재판을 없애는 등 체계를 고쳐나가고 있다.
정 부회장은 “세계 트렌드가 바뀌는데 우린 아직 부족하다”며 “더 과격하게 변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올해 신년회를 디지털 방식으로 바꿨다. 경영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제작하고 직원 이메일로 전달했다.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시청하라는 취지에서다.
매분기 정례적으로 열리던 대규모 임원세미나도 포럼 형식으로 바꿨다. 기존 방식이 주요 의사결정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면, 현재는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관련된 임원들만 참석한다.
구 회장의 탈권위적인 모습은 호칭에서도 드러난다. 구 회장은 직원들이 자신을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냥 ‘대표’로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총수가 사실상 그룹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한국 기업 특성상 총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세간의 관심은 클 수밖에 없다. 자칫 작은 실수도 기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도 늘 관리 대상이다.
하지만 이를 잘 활용만 한다면 기업이 추진하고자 하는 혁신과 비전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국내 대표 기업들의 총수들이 내외부적으로 적극적인 소통행보를 이어가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30대그룹에 속하는 한 관계자는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오너가 나서 새 시스템이나 신사업을 설명하면 파급 효과가 꽤 크다”고 말했다.
곽호룡 기자 horr@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