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하기만 하면 시가총액 5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를 모으던 SK루브리컨츠가 돌연 상장 계획을 물리면서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 무게중심이 하반기로 기울었다.
예상 시총 10조원의 ‘최대어’ 현대오일뱅크와 코스닥시장 기대주인 카카오게임즈 등이 일제히 올 하반기 상장을 앞두고 있다.
이들이 SK루브리컨츠 상장 철회가 IPO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란 일각의 우려를 깨고 증시에 데뷔할지 주목된다.
◇ SK루브리컨츠 철수…최대어는 현대오일뱅크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루브리컨츠는 지난달 27일 상장 추진 작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25~26일 진행된 수요예측 과정에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 받지 못했다는 게 회가 측이 밝힌 IPO 중단 이유다.
SK루브리컨츠는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상장주관사로 선정하고 IPO를 준비해왔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SK루브리컨츠의 상장 후 가치를 5조원 안팎으로 내다봤었다.
SK루브리컨츠는 윤활유 시장 점유율 35.8%의 1위 기업이다. SK이노베이션의 100% 자회사다.
작년 SK루브리컨츠 연결 매출액은 3조4000억원, 영업이익은 5049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영업이익률 14.6%, 자기자본이익률(ROE) 21.4% 수준의 탄탄한 영업능력을 갖췄다.
이 같은 호실적을 바탕으로 SK루브리컨츠는 희망 공모가 10만1000~12만2000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일부 기관투자자가 공모가격 밴드 하단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SK루브리컨츠의 IPO 좌절은 이번에 세 번째다. SK루브리컨츠는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물적분할한 이후 3년 뒤인 2012년 IPO에 도전하다가 윤활유 시장이 악화되면서 중단했다.
2015년 다시 IPO에 도전했지만 매각설이 나돌면서 상장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SK루브리컨츠의 이번 일정 중단 선언을 두고 업계는 상장 ‘연기’가 아닌 ‘포기’로 보는 분위기다.
SK루브리컨츠 IPO 철회에 따라 시장의 관심 대상은 현대오일뱅크로 집중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IPO시장의 독보적인 최대어로 꼽힌다. 상장 후 밸류에이션이 10조원 가량 될 것으로 추산된다. 올 3분기 목표로 IPO를 준비하고 있다.
구체적인 시기로는 10월이 가장 유력하게 언급된다. 내달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할 방침이다.
상장주관사는 NH투자증권과 하나금융투자다. 미래에셋대우와 신한금융투자,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BOA메릴린치 등이 공동주관사로 참여한다.
현재로서 현대오일뱅크 IPO는 계획대로 성사될 가능성이 크게 점쳐진다.
현대오일뱅크는 작년까지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작년 현대오일뱅크의 연결 매출액은 16조376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8%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1조2605억원으로 30.5% 늘어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모두 사상 최대 기록이다. 연간 영업이익은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올해가 IPO 최적기라는 평가다.
올해 실적은 더 개선될 것이란 전망은 현대오일뱅크 IPO 성공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지난해 현대오일뱅크 상각전영업이익(EBITDA) 1조5960억원에 상장 정유사 평균 멀티플 하단인 6배만 적용해도 시총 10조원이 된다.
◇ 코스닥 기대주 카카오게임즈·KTB네트워크
코스닥시장 상장 예비 기업 중에선 카카오게임즈가 가장 규모가 크다.
올해로 창립 2주년을 맞은 카카오게임즈는 지난해 한국투자증권을 상장 주관사로 선정하고 연내 상장 목표로 IPO를 준비하고 있다.
이달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하고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최종 상장 시기를 결정하기로 했다.
상장에 앞서 카카오게임즈는 지난 2월 14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해 자본을 확충했다.
이에 더해 향후 900% 무상증자를 실시, 코스닥 상장 요건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무상증자는 주식 1주당 9주를 무상 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카카오게임즈의 상장 후 시가총액은 1조원 안팎에 형성될 것으로 IB업계는 보고 있다.
지난해 카카오게임즈는 매출액 2013억원, 영업이익 386억원, 당기순이익 606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전년비 매출액은 99%, 영업이익은 282%, 순이익은 956% 성장했다.
작년 매출 3420억원을 낸 카카오 게임사업 부문을 지난해 말 통합한 데 따라 올해 카카오게임즈 매출 규모와 이익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국내 대표 창업투자사인 KTB네트워크의 IPO도 주요 관심사다.
KTB네트워크는 지난 3월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IPO를 위한 공동 주관사로 선정하고 연내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올 8월 한국거래소에 예비심사청구서를 제출하고 심사 통과 이후 구체적인 공모 시기를 확정할 예정이다. KTB네트워크는 1981년 과기처 산하 국영기업인 한국기술개발주식회사로 설립됐다.
1999년 민영화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지분 100%를 보유한 모회사인 KTB투자증권이 2008년 증권업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2011년 창업투자사로 전환했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85억원을 43개 기업에 투자하면서 창업투자사 145개사 가운데 최고 투자실적을 기록했다.
중국 관련 투자를 위해 운용중인 펀드 규모는 약 3000억원으로 국내 창업투자사 중 가장 크다. 전체 운용자산은 5000억원대로 국네 벤처캐피탈 업계 상위권이다.
KTB네트워크가 상장하면 시가총액이 6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KTB네트워크는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을 바탕으로 국내와 중국은 물론 미국, 태국 등 해외 벤처투자시장까지 보폭을 넓힐 예정이다.
일각에선 SK루브리컨츠 상장 철회가 올해 IPO시장 전반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특히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SK루브리컨츠와 같은 정유업종이라는 점이 리스크로 꼽힌다.
정유산업은 유가에 따라 수익 변동성이 커 투자자가 높은 평가를 적용하기 곤란한 업종이다.
SK루브리컨츠 수요예측에서 투자자들이 정유산업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현대오일뱅크가 자사 밸류에이션을 공격적으로 제시하기 어려울 수 있다.
카카오게임즈와 KTB네트워크 등 나머지 IPO 예정 기업들도 공모가를 보수적으로 산정할 개연성이 크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SK루브리컨츠 수요예측 실패 원인으로 공모가와 기업가치간 괴리를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공모가를 높이 인정받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기관투자자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선 오너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상장일정을 중단한 호텔롯데가 올해 다시 IPO에 도전할지 여부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
호텔롯데는 2015년 상장을 처음 준비할 당시 공모 규모가 6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신동빈닫기신동빈광고보고 기사보기 롯데그룹 회장이 법정 구속되면서 절차가 전면 중단됐다.
신 회장이 수감생활을 이어가는 한 호텔롯데 상장 시기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호텔롯데가 올해 상장을 다시 추진할 경우 처음 IPO를 준비하던 당시만큼 가치를 인정받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오너가 부재한 동안 면세점 실적이 저하되고 재무구조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롯데그룹이 3년 전 ‘형제의 난’을 겪으면서 약속한 지배구조 개선, 경영 투명성 제고를 실현하려면 상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IPO를 직접 챙겨온 오너가 부재한 상황이라 상장 추진이 언제 재개될지 모르고 처음만큼 가치를 인정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하지만 시장에 약속한 경영 투명화를 실천하려면 상장을 안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sujk@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