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업계 전전긍긍
정부가 뒷짐 지고 있는 사이 자동차 업계는 대책 마련에 전전긍긍이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FTA 체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FTA에 따라 한국 자동차에 부과하던 관세(2.5%)를 2012년 협정 발효 후 2015년까지 4년간 유지하다가 2016년 폐지했다.
이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자동차는 현재 무관세로 미국 시장에서 일본과 유럽산 자동차(2.5% 관세율)에 비해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이번 FTA 개정협상 과정에서 관세가 부활하면 국내 자동차 업계에 피해가 불가피하다.
수출이 가뜩이나 부진한 상황에서 이 같은 악재가 겹치면 국내 차 산업의 사활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도 제기된다. 특히 현대·기아차의 미국 판매량 중 절반 가량이 미국 현지 생산이 아닌 국내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건너가는 물량인 만큼 관세가 부활하면 수출이 막힐 가능성이 크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지난해 154억9000만 달러로 미국차 수입액(16억8000만달러)의 9.2배에 달한다.
그러나 FTA 개정협상 과정에서 관세가 부활하면 수출 가격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자국 기업 이익 보호, 미국 ◁ 한국
현대·기아차의 미국 판매량 중 절반가량이 국내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되는 만큼 관세가 부활하면 수출이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현대·기아차의 전체 수출 가운데 미국 시장의 비중은 3분의 1 (2017년 상반기 승용차 기준) 수준이다. 업계는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이익을 해치지 않은 정책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여러 시나리오 중 자동차 관세를 폐지하는 것 또한 있는 것으로 전해 들었다”면서도 “한국정부와 미국정부가 쉽사리 결정 짓기는 힘 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국간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은 미국 자동차에 대한 수입 관세(발효 전 8%)를 2012년 발효 직후 절반(4%)으로 낮춘 뒤 2016년 완전히 없앴다. 관세 철폐 효과에 힘입어 협정 발효(2012년) 후 지난해까지 미국산 자동차의 국내 수입량은 2만8361대에서 6만99대로 4.4배 급증했다. 수입금액도 7억1700만달러에서 4.6배인 17억3900만달러로 늘어났다.
이 기간 미국차 수입 증가율(339.7%)은 전체 수입차 증가율(158.8%)의 두 배에 이른다.
◇ 반덤핑 ‘관세 폭탄’에 수출 포기 활발
철강업계도 냉가슴만 앓는 모양새다. 지난해 미국 무역대표부로부터 반덤핑 관세 폭탄을 수차례 맞으며 포스코 등은 사실상 대미 수출을 포기했다. 철강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무관세 협정에 따라 2004년부터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하고 있다. 만약 한미 FTA가 폐기된다면 미국이 한국산 철강에 반덤핑·상계관세를 더 엄격하게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에 따르면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철강의 약 81%가 이미 반덤핑이나 상계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미국 정부가 발표를 보류한 ‘무역확장법 232조’ 수입산 철강 조사 결과도 여전히 철강업계를 긴장시킨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8월 대미 철강 수출은 251만8000톤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261만9000톤보다 약 10만톤 줄었다. 우리나라 철강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기록한 전 세계 철강 수출은 2145만8000톤으로 대미 수출 비중은 11.7%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지난해 한국의 대미 수출액과 수입액은 각각 26억8523만달러, 4억1726만달러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철강부문 무역적자는 22억6797만달러다. 반면, 한미 FTA 발효 직전인 2011년 대미 수출액과 수입액은 각각 32억3914만달러, 5억6402만달러로 미국의 무역적자는 26억7512만달러다.
이 같은 하락세는 미국의 보복관세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미국 정부는 포스코 냉연제품에 대해 반덤핑 관세율 6.32%, 상계관세율 58.36% 등 64.68%의 관세를 부과했다. 열연제품에는 반덤핑 관세율 3.89%, 상계 관세율 57.04% 등 모두 60.93%의 ‘관세 폭탄’을 던졌다. 또한 미국 정부는 수입산 철강이 자국 안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 세아제강 ‘웃고’ 포스코·현대제철 ‘울고’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반덤핑, 값싼 전기료 보조금 주장은 FTA와 관계없지만 미국이 이를 근거로 관세 부과를 요구할 수 있는 만큼 협상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제품군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실제 유정용 강관을 생산하는 세아제강은 오히려 미국 수출을 늘리고 있는 중이다. 올해 상반기 강관 수출량은 3687억1400만원치로 전년대비 66.4%가 증가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4월 세아제강에 대한 미국 OCTG강관 수출 반덤핑 관세를 2.76%로 최종 판결했다. 이는 예비판정(3.8%)보다 낮게 결정된 것이다.
반면 현대제철과 포스코 역시 노심초사다. 현대제철은 미국에 수출하는 도금·냉연·열연강판 가운데 40%가 자동차용으로 현지 계열사인 현대·기아차에 납품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달 미국 중부 인디애나주 제퍼슨빌에 연산 2만5000톤 규모의 선재 가공센터 준공식을 열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FTA로 인한 관세 문제보다는 무역확장법 232조(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수입품에 대한 수입 제한 조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유명환 기자 ymh7536@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