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은행권 중에서도 전산부서의 파업 참여율임을 감안하면 단순히 ‘제밥그릇 챙기기’ 차원에서 이번 파업을 바라볼 수만은 없게 됐다.
남아있는 직원이든 자리를 비운 직원이든 고생하는 건 마찬가지. 전산실을 지키고 있는 직원들도 파업에 직접 동참하지는 않고 있지만 마음만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고객불편과 금융위기 상황만 부각시키는 언론에 대한 아쉬움도 많다. 뭐니뭐니해도 상황을 이렇게까지 몰고온 정부당국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가장 높다.
일관성없는 정책으로 상황을 파국으로 몰고 온 감독당국은 파업에 대처하는 방식에서도 내부 조율을 거치지 않은 실언들로 빈축을 사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27일부터 타은행을 통한 국민-주택은행의 예금 대지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해당은행은 지원시스템을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해당 은행 관계자들은 26일 오전에야 관련 회의를 가졌다. 서둘러 지원시스템을 마련하고 있지만 최소한 2~3일은 소요된다는 것이 담당자들의 말이다.
대지급을 위한 국민-주택은행의 인력도 부족한 실정이어서 설령 시스템이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대지급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예금 대지급 발표를 믿고 은행을 찾아간 고객들만 골탕을 먹었다.
또한 최악의 상황임을 전제로 하긴 했지만 국민-주택은행의 모든 계약자산을 타은행 혹은 정상화가 먼저 이루어지는 은행으로 이전시킨다는 시나리오를 검토중인 것이 외부로 알려지기도 했다. 국민-주택은행의 계약자산을 타은행으로 이전시키는 작업은 해당 은행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전문인력이 참여해도 6개월 이상 소요되는 대형 작업이다. 특히 외부인력이 고객원장을 타은행으로 이관시키는 것은 전산용량의 부족은 물론 대형 금융사고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대비책을 강구할 수는 있지만 홍보성, 엄포성 실언은 떨어질대로 떨어진 감독당국에 대한 신뢰하락만 부추길 뿐이다. 금감원의 다른 관계자도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다양한 검토안 중 하나였을 것”이라며 실현 가능성을 일축했다.
국민-주택은행의 합병이 시장원리에 근거한 자율합병이 아니라는 것은 공공연한 시장의 인식이다. 은행권 관계자들은 정부당국의 ‘어설픈 용감함’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합병이라는 절대목표를 향해 ‘무한질주’하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과감함이 정말로 필요한 영역에서 발휘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춘동 기자 bo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