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 /사진제공 = 각 사
17일 법조계·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박정림 KB증권 전 사장과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이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주현닫기김주현기사 모아보기)를 상대로 낸 중징계(직무 정지·문책 경고)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해 11월 29일 제21차 정례회의를 열고 박 전 사장과 정 사장이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위반했다며 각각 중징계에 해당하는 직무 정지 3개월과 문책 경고 처분을 내렸다.
금융회사 임원 제재 수위는 ▲주의 ▲주의적 경고 ▲문책 경고 ▲직무 정지 ▲해임 권고 등 5단계로 나뉜다. 이중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은 임원은 3~5년간 금융회사 취업이 제한된다. 이에 박 전 사장과 정 사장은 금융위를 상대로 중징계 처분 취소 청구 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인용을 두고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무리한 징계를 내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의 경우 판매사는 자본시장법상 자산운용사와 판매사 간 정보 교류가 금지돼 운용사의 불법행위를 알 수 없는 가운데 앞서 기관 제재를 받았고 운용사 대신 보상 책임도 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피해자를 의식해 불법 의도성이 없었음에도 무리한 징계를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금융당국은 지난 2020~2021년 라임·옵티머스 사태 관련,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징계할 당시 자본시장법이 아닌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제재를 가했다. 이를 두고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CEO 징계에만 초점을 뒀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 금융당국의 징계 처분이 과도하다는 법원의 판결 사례도 있다. 지난 2020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사태에서 내부통제 기준 관련 조항 위반으로 중징계 처분을 받은 손태승닫기손태승기사 모아보기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경우 금감원을 상대로 취소 청구 소송에 나섰다. 결국 지난해 말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금융당국은 금융회사 CEO·임원들의 내부통제 책임을 명확히 하는 지배구조법 개정 추진에 나서 지난달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반면, 금융당국의 무리한 징계가 아니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중징계 가처분 신청이 인용됐을 뿐, 아직 본안 소송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두 사장의 집행 정지 신청은 요건에 맞아 받아들여진 것이지 본안 소송과 별개 사안이다”며 “집행정지 가처분이 인용됐다고 해서 무리한 징계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두 사장 모두 중징계에 대해 개인적으로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증권업은 규제 산업인 만큼 당국이 법안 규정을 근거로 판단했다면 그 부분들은 지켜지는 게 맞다”며 “사회적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투자자 피해가 발생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역할이며 내부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도 금융 산업의 기본이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당국의 강한 제재 수위에 증권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업계의 시각은 나뉘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는 조금이라도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 리스크 관리·내부 통제 등을 지적 받고 징계 수위도 강한 편이다”며 “그러다 보니 최근 신규 사업이나 딜을 진행할 때 굉장히 보수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증권사 본연의 역할을 할 때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증권사 CEO 등 개인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묻게 되면 신사업에 대한 투자 등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 결국, 혁신적 사업이 창출되기 어려워진다”며 “최고 결정권자인 CEO가 책임을 지는 것은 맞지만, 의도성에 따라서 구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증권사의 비즈니스는 그 자체가 적법한 영역 안에서 문제 없이 진행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기존에도 징계 수위가 무겁다고 해서 비즈니스를 진행하지 않은 사례는 없었다. 그러므로 증권업계가 위축될 하등의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전한신 한국금융신문 기자 pocha@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