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영(외쪽부터) 삼성중공업 사장,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사진=각사.
국내 조선업계는 2014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인정받는 글로벌 Top 자리를 단 한번 도 놓친 적이 없었다. 막강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토크(선박 제조 현장)에 건조할 물량이 넘쳤다. 같은 기간 빅3 CEO들은 넘쳐나는 물량으로 인도 시점을 조율해야 했던 행복한 고민을 즐긴 적도 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자신들의 월급을 내놓는 입장에 처했다. 이는 최근 글로벌 선사가 중국 조선사에 약 1조6000억원에 달하는 컨테이너선을 발주하면서다. 이를 두고 업계는 “당혹스럽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중국에”라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28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2만2000TEU(1TEU는 6m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9척을 발주한 프랑스 선사 CMA CGM은 최근 중국 조선사인 후동 중화와 상하이와이가오차오에서 건조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우리 조선업계는 중국 조선업체와 경쟁력에서 앞선 우리 업체가 선정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을 깨고 중국조선사가 낙찰 받은 것이다.
중국조선사와 수주전을 벌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3사가 ‘옛 인연’과 높은 기술력을 앞세워 중국 조선사들과 막판까지 경합했지만 일감이 모두 중국 조선사에게 넘어갔다.
이번 발주 선박은 역대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선으로, 기존의 벙커씨유와 친환경 액화천연가스(LNG)를 모두 사용하는 친환경 ‘이중연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선박 연료에서 배출되는 황산화물에 대한 국제적 규제 강화로 우리 업체마다 초대형·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의 신규 발주·수주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전혀 예기치 못한’ 고배를 들게 된 셈이다. 가뜩이나 최악의 일감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조선업계는 앞으로도 중국업체에 저가수주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에 빠져들었다.
◇ 중국 저가 수주 공세에 ‘패닉’
조선업계 관계자는 “빅3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은 세계에서도 알아줄 정도”라며 “첫 고객이 쉽게 다른 곳을 선정하는 일은 드물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조선사가 수주를 했다는 사실에 업계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다”며 “글로벌 1위라는 명성에 ‘흙탕물’을 끼어진 꼴”이라고 성토했다.
국내 조선업계가 이처럼 패닉에 빠진 이유 중 하나는 수주금액이다. 9척의 수주총액은 14억 4000만달러(한화 약 1조6000억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또한 CMA CGM는 정통적으로 국내 조선사와 지속적으로 거래를 했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낀다는 평가다.
실제 CMA CGM는 2015년 현대중공업은 단독 협상으로 수주한 바 있었다. 삼성중공업 역시 현대중공업이 이번에 2만2000TEU급 컨테이너선 건조 계약을 맺을 경우 지난 5월 삼성중공업이 인도한 2만1100TEU급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1척 건조 기록을 내세웠지만 수주전에서 쓴 잔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세계시장에서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는 우리 업체들의 거의 독무대였는데 이제 저가 선박뿐 아니라 초대형·고부가가치 선박마저 중국에 잠식당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업황 악화 가시밭길…CEO 급여 없이 종군
좀처럼 업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빅3 직원수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또한 각사 최고경영자(CEO)의 무월급 근무도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조선 3사 직원수는 2016년 6월말 기준 4만3074명에서 2017년 6월말 3만6610명으로 6464명이 줄었다. 감소폭이 가장 큰 곳은 현대중공업으로 모두 3263명의 직원이 떠났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서도 800여명과 2200여명이 줄었다. 직원 급여 역시 줄었다. 현대중공업의 작년 6월 직원 평균 급여는 3265만원이었지만 올해 6월 2837만원으로 감소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직원 평균 급여가 2900만원(지난해 3100만원)으로 줄었다.
또 현재 조선 3사 CEO는 모두 월급을 받지 않고 근무하고 있다. 대우조선 정성립 사장은 올들어 회사가 정상화될 때까지 임금 전액을 반납키로 했고, 삼성중공업 박대영 사장은 작년 7월부터 월급을 한푼도 받지 않고 있다.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도 월급을 반납 중이다.
◇ 엎친데 덮친 ‘불황형 흑자’ 발생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조선업계 ‘빅3’는 2017년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동반으로 흑자를 달성했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사업축소, 임금삭감, 유형자산 매각 등으로 일궈낸 것이다. 이들을 제외할 경우 지난 2년간 적자 상태다.
현대중공업에 상반기 연결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올해 2분기 매출액은 4조6292억원, 영업이익 1517억원으로, 2016년 1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한 이후 6분기 째 흑자를 이어갔다. 삼성중공업도 가까스로 흑자 기조를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2분기에 20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지난해 3분기부터 4개 분기 연속 흑자를 냈다.
대우조선은 상반기 매출액은 6조1881억원, 영업이익은 8880억원, 당기순이익은 1조4883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약 13% 감소했으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흑자전환했다. 아울러 재무구조도 1분기말 부채비율 1,557%에서 상반기 기준 248%로 개선됐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상반기 인도된 해양플랜트와 관련하여 주문주 측과의 협상을 통해 공사대금을 추가 확보하고 인도지연 지체보상금 조정에 성공한 것이 흑자달성에 크게 기여했다”며 “과거 거액손실의 원천이었던 해양플랜트가 정상적으로 대부분 인도됨에 따라 손익악화 요인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삼성중공업도 가까스로 흑자 기조를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2분기에 20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지난해 3분기부터 4개 분기 연속 흑자를 냈다. 업계는 각사들이 마른수건을 짜내 얻는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올해 상반기 조선업계는 순환무급 휴직·인력감축·자산 매각 등 방법으로 비용 절감에 총력을 기울였다. 표면적으로 매출은 줄고 이익이 늘어나는 ‘불황형 흑자’로 연결된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당분간 CEO들의 급여 정상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하반기부터 수주를 위해 ‘동분서주’ 해야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명환 기자 ymh7536@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