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온라인 활동이 어려운 고령층의 경우 혜택을 누리기 어려울 뿐 더러 지점마저 줄어들고 있어 은행 이용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 디지털 적응 어려운데 이용 지점 축소
한국은행이 발간한 2016년도 지급결제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금융 거래 활용 비율은 연령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60대 이상은 인터넷 뱅킹 및 대금 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전 연령대 중에서 52.9%로 가장 낮다. 20대는 82.4%다. 디지털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는 주요 원인은 ‘구매절차 복잡’(56.5%)이나 ‘인터넷 사용 미숙’(37.5%) 등이다.
노년층의 경우 지점 방문을 선호하지만 지점의 전체 숫자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9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5년 전인 7698개에 달했던 은행 영업점포수는 지난해 말 현재 7103곳으로 600개 가까이 줄었다. 지난해만 은행 점포 수는 모두 175개가 줄었다. 노년층 은행 방문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특히 은행 점포가 주로 대도시에 몰려있어 그 외 지역에 거주하는 노년층일수록 불편함이 더 커진다.
이주열닫기이주열기사 모아보기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6월 금융협의회에서 디지털기술 이용도가 높아질수록 금융소외계층이 양산되는 문제를 지적하며 “디지털 기술의 확산이 계층별로 격차를 확대하는 쪽으로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 금융 소외층은 은행 거래에서도 차별
금융 소외를 겪게 될 경우 은행 거래에 있어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시중은행은 창구에서 예금 상품에 가입하는 고객에게는 인터넷·모바일 뱅킹을 이용하는 이들보다 0.1∼0.2% 포인트 정도 낮은 금리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고 대출의 경우 반대로 높은 금리를 적용하기도 한다.
미래금융학자 브렛 킹은 2013년 저서 ‘뱅킹 3.0’에서 “뱅킹은 더 이상 은행이라는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 일상으로 스며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2015년에는 “10년 안에 기존 은행 지점 70~80%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금융 소외 문제는 더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금융으로 변화라는 대세를 거스르기는 어렵다. 소비자에게는 편의성 증대를, 금융기관회사에는 비용절감이라는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은행 점포 폐쇄는 소비자가 편의성을 찾아 인터넷 뱅킹 등 비대면 거래에 몰리고 이에 은행들은 임대료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이기도 하다.
◇ 금융 난민 예고하는 이용 실태 현황
그러나 인터넷과 모바일로 은행거래를 하는 고객층을 분석한 결과 전체 고객의 30% 가량은 여전히 인터넷뱅킹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은행들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에 반해 고객들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경우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고령층과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거주자들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금융기관에 등록된 인터넷뱅킹 등록고객수는 1억 1475만 명이다. 스마트폰뱅킹 등록고객수도 지난해 말 기준 4653만 명에 달한다. 이는 여러 은행을 사용하는 고객이 중복 합산된 수치다.
국회 정무위원회 이학영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군포 을)이 금융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은행별로는 국민은행은 944만명, 우리은행 675만명, 신한은행 849만명, 하나은행 711만명, SC제일은행 236만명이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외국계 은행인 한국씨티은행은 거래 고객 323만명 중 68만명이, SC제일은행의 경우 전체 이용고객의 절반이 인터넷 뱅킹 미사용 고객인 것으로 나타났다.
씨티은행의 경우 얼마 전 오프라인 영업점 점포 이용율 하락, 모바일 뱅킹 확산,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국내 점포 133개 중 90개에 대한 폐쇄 계획을 발표했다. 인터넷 뱅킹 미사용 고객들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지점이다. 씨티은행은 지점 폐쇄 논란이 거세지자 제주와 경남, 울산, 충북 등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면 지점이 한 곳도 남지 않는 지역을 위주로 11개 영업점을 추가로 남기기로 결정했다.
씨티은행 뿐만 아니라 시중은행 또한 같은 이유로 차츰 점포를 줄여가고 있다. 지난 한해동안 국민은행은 59개, 우리은행 37개, 하나은행 101개의 영업점포를 폐쇄 또는 통폐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 설치된 CD·ATM 수도 12만 306대로 3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 2013년(12만4236대) 이후 4만여 대가 줄어든 수치다.
이학영 의원은 “은행은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을 수행하는 등 공공성을 지니고 있는데, 비용 감소 등을 이유로 대다수의 영업점포를 폐쇄해버린다면 이러한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라며, “핀테크, 모바일뱅킹의 활성화 등 시대적 흐름은 피할 수 없으나 금융당국은 은행이 대책없이 점포를 폐쇄해 금융소비자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속도조절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 부유 노년층은 특화 창구 늘리고 찾아가기까지
정치권의 우려는 금융난민이 결국 고령층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령층의 경우에도 사정은 다 같은 건 아니다. 노년층은 보유 자산에 따라 은행에서 받는 대접이 양극화 되고 있다. 은행들은 부유 노년층에 대해서는 자산관리 강화에 나서며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서민 노년층은 디지털 문맹 현상을 겪는 가운데 지점마저 줄어들며 은행 이용에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부유 노년층의 경우 은행마다 특화 창구를 늘리는 등 모셔오기에 열중이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2년 출생자)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은행들은 시니어 고객 유치를 위해 영업점에 전담 창구를 개설하는 등 노년층을 위한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잇따라 제공하고 있다.
현재 은퇴 고객을 위한 특별 창구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은 국민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 기업은행 등 대부분의 시중은행이다. 이 창구들은 큰 글씨 및 느린 말 서비스 등 맞춤형 혜택을 제공한다.
특히 은행들이 주목하는 것은 은퇴 금융 상품이다. 은퇴한 이들은 목돈을 보유했지만 이를 사용하기 보단 길어진 노후 대비를 위해 안정적인 방법으로 자산을 늘리기 원하기 때문이다.
특히 퇴직연금 상품의 경우 가입 대상이 대폭 확대되고 이들을 끌어들이면 우량 고객층을 주거래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에 은행들이 신경쓰는 상품이다. 윤종규닫기윤종규기사 모아보기 KB금융지주 회장 또한 “개인형퇴직연금은 미래 먹거리”라 말하며 집중 관리를 주문하기도 했다. KB금융은 매년 ‘부부 힐링캠프’, ‘KB골든라이프 조찬세미나’, ‘행복노후설계 세미나’ 등 다양한 고객초청행사를 실시하며 퇴직 고객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은행들의 차별적인 금융 서비스 제공은 앞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실제로 은퇴 고령자가 한국보다 더 많은 일본의 경우는 철저하게 고객 분류를 통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KB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MUFG은행, 미즈호은행, 미쓰비시UFJ신탁은행, 일본생명보험, SONY생명 등 일본 금융회사들은 부유층 시니어고객을 주요 고객으로 한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MUFG은행의 회원제 프로그램인 ‘퀄리티 라이프 클럽(Quality Life Club)’에 가입하려면 예수금 잔고가 1000만엔 이상 돼야 하며 가입 신청 후에 소정의 심사를 거쳐 입회가 가능하다.
◇ 보완점 마련 분주
은행들은 일련의 변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흐름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치권을 중심으로 금융 공공성에 대한 논의도 점차 나타나고 있다. 수익성 추구 과정에서 금융 소외가 발생해 피해를 입는 사례를 더 늘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지점 신설이나 폐쇄 시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게 하고, 은행업 인가 요건 중 전국 점포망 유지 등을 추가해 매년 심사를 받도록 하는 방향으로 은행법 개정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과 지난 4일 ‘은행업 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은행업 인가요건 구체화를 위한 은행법 개정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는 씨티은행의 점포 통폐합 관련 논쟁에서 비롯되었는데 토론 패널 중 한 명인 토론자로 나선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방은행이 아닌 전국을 영업구역으로 하는 은행이 지방의 고령 금융소비자를 의도적, 실질적으로 차별했고 그것이 은행업 인가 때 특별히 허용받은 사항도 아니라면 사업계획 변경을 타당하고 건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며 지점 폐쇄 흐름이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송병준 금융노조 한국씨티은행지부 위원장은 “대규모 인원 구조조정을 동반하게 될 우려로 심각한 노사갈등을 초래하게 된다”며 “경영진들은 국내에서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을 해외 송금하면서도 지점 대부분을 없애 특히 서민들에 피해를 전가하려는 계획을 실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반면 금융당국에서는 “원칙적으로 자율적인 경영판단 사항”이라는 점을 들었지만 소비자피해나 은행의 경영 안정성에 대한 부분에 대해 보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김진홍 은행과장은 “외국 사례로 점포 신설, 통폐합 등 관련 법규를 살펴보니 은행연합회를 통한 자율협약 등을 맺고 있다”며 “당국도 제도적 부분을 고민하고 은행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고 있으며 씨티은행이 합당한 선례가 되도록 은행도 자발적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를 개최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98년 은행법 개정 이후 은행의 경영 자율화를 확보해주면서 은행들은 당국 허가 없이도 제한없는 점포와 인력 조절이 가능하게 됐지만 그동안 한번도 대규모 점포정리가 계획되지 않아 사회적 부정적 효과에 대한 우려가 논의되지 않았다’며 “씨티은행의 발표로 상황이 바뀐 만큼 현행 은행법이 가진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토론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신윤철 기자 raindrea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