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외환위기 20년, 4차 산업혁명은 커녕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

입력 : 2017-04-14 10:44 ㅣ수정 : 2017-04-1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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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신문 정희윤 기자] 2017년이 어떤 해이던가. 국민 대부분에게 악몽으로 남은 1997년 외환위기 20년이 지난 시점인데 다시 위기와 기회의 기로에 서 있다.

중후장대냐 경박단소냐, 의미 없다. 주주 중심이냐 이해관계자 중심이냐 논쟁도 낡은 패러다임으로 보인다.

대기업이 애써서 플랫폼을 갖춰놓은 뒤 스타트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들에게 거저 쓸 수 있도록 내어 놓자는 시대. 그래서 수익 시너지를 높이자는 ‘오픈 이노베이션’ 패러다임이 왔다. 스스로 갖추지 못한 경쟁 요소가 필요하다면 매력적인 기업을 기꺼이 인수합병하거나 기술을 왕성하게 사들였기에 세계 최고가 된 기업도 있다. 지난 해 일부 국회의원들이 ‘재벌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절취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던 것이 기억난다. 글로벌 일류 기업은 시장 가격(적정 가격이 아니라)을 주고 당당하게 자기 것으로 하는 반면 아직도 일부 대기업은 부도덕한 방법을 동원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심 경쟁력을 미래 수요에 걸맞게 보완하는 일. 핵심 사업의 방향을 전환하면서 주주는 물론 내부 구성원과 외부 이해관계자의 공감 없이 성공하기 어려워진 시대가 왔으면 그에 합당한 사고와 관점 그리고 스타일로 변신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외환위기 20주년이 약 7개월 남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4차 산업혁명에 제대로 대응하기는커녕 당면한 현안조차 풀어갈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숨길 기력조차 없다. 세계 1위라며 도취했던 시절이 지나고 큰 우환 거리로 남은 조선산업 진로 설정조차 버거운 처지 아닌가.

국민 혈세 투입은 없다던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장담은 겉은 맞췄지만 속은 빗나간 것이 됐다. 재정 투입이 없고 정부가 채권을 찍어서 돈을 대주는 것도 아니니까 혈세 투입은 아니지만 정부가 주도했고 산은을 비롯한 채권단이 끌려 다니며 대우조선해양 경영 상태가 거듭 악화되는 추세는 전혀 막지 못했다. 또 다시 추가 자금 지원안을 마련해 놓고도 자율협약과 워크아웃에다 법정관리 장점까지 혼합됐다는 ‘P플랜’으로 가는 방안을 마주하기까지 했다.

일감을 따오고 적자를 메우는 일부터 다급한데 언제나 흑자 전환으로 돌아서서 빚을 갚을지 예측 불가능한 까닭은 너무 뻔하다.

노후선박 교체주기가 다가오고 국제 기름 값이 나아졌으니 선박 발주가 재개될 것이라는 낙관론부터가 지나치게 막연했다. 글로벌 조선업이 한중일 삼국지 판세라고 한다면 국내 조선사만 일감이 없어 절박한 것도 아니다. 어느 회사는 국내 생산기반을 버리고 해외 이전한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과잉투자를 멈추고 가지치기를 진행한 중국을 보면 저가 수주로 앞길을 제대로 가로막아 줄 힘센 복병이다.

발주 물량이 풀리기 시작한다손 치더라도 우리 조선사들이 당장의 급박함 때문에 원가 이하 입찰서를 써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입모으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박한 마진이라도 남길 수 있는 수주 물량이 얼마나 될지도 불투명해 보인다.



이렇게 보니 10년 전이나 다름 없는 2008년 무려 6조3000억원의 막대한 돈을 들여 대우조선을 인수하려다 막판에 회군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결단은 얼마나 대단한 탁견인가?

막판 포기 때문에 매각대금 5%인 3150억원이나 되는 큰 돈을 산업은행에 ‘몰취’ 당하는 고초야 겪었지만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부 돌려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최근 만난 한화그룹 한 관계자는 “그 때 산은이 조건을 완화해 달라는 우리(한화그룹쪽)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건 다시 봐도 오판이었다”고 주장했다.

매각대금을 깎아주고 그 돈이라도 챙겼으면 훨씬 나았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매각차익이 성에 차지 않을지언정 대우조선에 묶였던 돈을 회수하고 손 뗐다면 벌써 몇 년째 걷고 있는 가시밭길 쪽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을 것 아닌가.

한화 입장에선 M&A 실패가 오히려 큰 화근이 될뻔한 소지를 말끔히 절연시켜서 다행스런 일로 남았다.

능력보다 연줄에 의지했던 낙하산 경영진과 깜깜이 채권단 감시가 글로벌 굴지의 조선사 하나를 침몰 위기에 이르게 했다는 비판은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일이다.



김승연 회장이 대우조선 인수를 포기한 이유는 단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암운이 깔리자 재무적 투자자들이 발을 빼려 했기 때문이다. 위기가 밀려오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무리인 줄 뻔히 알면서 대형 M&A를 기어이 성사시키겠다고 고집하지 않는 적정한 수준의 유연성을 보였던 것은 과정도 올바르고 결과 또한 좋았던 셈이다.

그래서 이젠 거꾸로 국내 채권은행들은 조선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방향을 제대로 잡고 갔었던 것인지 의문을 품기에 이른다.

조선 뿐 아니라 부실에 빠진 대기업 구조조정이 성과 없이 시간만 끌고 만 경우는 결코 적지 않다. 한진해운 구조조정도 좌충우돌 거듭하다 최종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그렇다고 듬직한 미래성장동력 삼을 산업을 번듯하게 키워 놓은 것도 없다. 잃어버린 10년이니, 좌파정부 타령이나 하던 9년 동안 우리 산업경쟁력은 후퇴를 거듭했다. 기업구조조정과 연관된 분야를 넘어 심지어 “일상적 사안까지 간섭한다”는 원성이 나올정도로 관치금융이 오히려 강화됐다. 게다가 민간기업 경영자율성을 해친 사실이 드러나 대통령이 탄핵되는 동안 우리나라엔 산업정책이란 게 있기는 했던 것일까?

남들은 4차산업혁명 주도권을 잡겠다고 저만치 앞서가다 못해 이제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비전 현실화에 속도를 높이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지난 20년 동안 무엇을 한 걸까? 양극화 사회, 사내유보금, 중소기업적합업종, 귀족노조. 토론을 열면 다시 팽팽한 공방이나 펼칠 것이 뻔한 20세기 의식구조가 지배하는 사회인데 무슨 ‘초연결’이며 ‘무한 디저털 세상’을 열 수 있으며 순탄한 융복합이 어찌 이뤄질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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