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 운용사 알고리즘오류로 약 11만계약 주문
지수선물시장이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계약의 대량주문이 유입되고 일부는 체결되며 한때 시장을 짓누르는 시한폭탄으로 떠올랐다. 지난 7일 지수선물 3월물의 호가에 쌓인 물량은 14시 5분부터 비정상적으로 급등했다. 당시 매수호가는 268.20p. 이 가격대에 약 11만계약의 주문이 쌓였으며 이 가운데 2만5225계약은 실제 주문이 체결됐다.
보통 지수선물시장의 일평균거래량은 많아야 대략 15~20만계약. 한 호가에 하루 절반에 해당하는 물량이 쌓이며 온갖 추측이 난무하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DMA(Direct Market Access: 직접주문전용선)를 경유한 알고리즘 매매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 주문실수가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주요 주문 증권사는 KB투자증권으로 고객인 홍콩계 운용사가 DMA주문을 내는 과정에서 로직오류가 발생 대량주문이 전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 KB투자증권이 대량주문에 대한 현금증거금 약 3100억원을 대납하며 마진콜에 따른 반대매매물량출현의 우려가 사라졌다. 홍콩 운용사도 이틀사이 장중, 야간선물시장에서 약 2만5000계약에 달하는 주문오류포지션을 분할청산하며 상황은 마무리단계다.
◇ 떠안은 매매에 따른 손실 부메랑우려
관건은 전산오류에 대한 책임이 홍콩운용사 혹은 KB투자증권 어느 쪽에 있느냐다. DMA주문을 받은 KB투자증권 쪽 전산오류면 정상주문 외의 오류 주문에 대한 포지션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 거꾸로 홍콩 운용사의 고빈도매매의 알고리즘 오류가 주요 원인이면 상황은 180도 다르다. KB투자증권은 오류된 주문을 그대로 거래소에 전송했을 뿐 원래의 주문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현재 KB투자증권은 전산오류의 책임을 홍콩 운용사 알고리즘오류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히면서 주문오류에 따른 책임은 없다는 입장이다.
KB투자증권 관계자는 “홍콩 운용사의 전산오류에 대한 물량이 하루만에 청산됐다”며 “증거금관련 결제리스크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오히려 대량거래에 따른 수수료수익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실제 체결된 포지션은 약 2만5225계약. 보통 DMA거래수수료가 대략 0.001% 안팎인 것으로 감안하면 이번 대량거래로 약 5~6억원의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추정된다. KB투자증권 관계자는 “거래수수료가 발생한 건 맞다”며 “하지만 홍콩운용사가 주문오류로 손실을 본 만큼 그 수수료를 모두 받을지, 협의할지 아직까지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대량선물주문 오류의 비바람에 완전히 비껴갔다고 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홍콩의 운용사인 주문오류에 따른 포지션의 손실을 순순히 KB투자증권에게 갚을지가 미지수다. 청산에 나섰던 지난 8일 지수선물 3월물이 265.50p로 떨어지고 1계약당 매입가격 대비 약 2.7p 하락하면서 약 130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KB투자증권이 증거금을 대납하며 매매차익에 따른 손실까지 떠안고 있다는 점이다. 이 운용사가 손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 민사상으로 구상권행사 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한국에 지점도 없는 홍콩운용사와 기약없는 법적공방을 벌일 것으로 감안하면 돈을 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DMA절차를 규정대로 지켰는지도 논란거리다. 규정상 미결제약정수량의 보유한도를 초과하는 경우 초과분에 대해 주문의 수탁이 거부돼야 한다. 약 11만계약 주문을 그대로 받아줬다는 점에서 원장체크없이 다이렉트로 주문이 입력됐을 가능성이 높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9일 KB투자증권으로부터 선물대량주문건에 대해 사후보고를 받았다. 이 보고를 토대로 주문처리방식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문제가 있으면 검사에 나설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관투자자, 적격투자자는 사후 증거금제도가 적용되는데, 홍콩운용사가 과연 적용대상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약 11만계약의 비정상적 주문에 대해서도 KB투자증권이 사전에 체크했는지 등 제도적 관련부문을 짚어보고 문제가 있으면 검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