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월 기준 주요 시중은행 5곳(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영업점포 수는 총 3830개로, 전년 말 대비 97개 감소했다. 디지털 전환 및 경영 효율화에 따라 은행들이 점포를 통폐합한 결과다.
점포 통폐합은 올해에도 꾸준히 진행될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올해 총 50개 점포를 24곳으로 통합 대형화할 예정이며 우리은행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금융센터를 포함한 전국 26개 지점을 인근 지점과 통합할 계획이다. 문제는 비수도권과 상대적으로 경제 규모가 작은 지역의 점포 축소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금융연구원이 발표한 '국내 은행 점포 분포에 대한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거주 지역에 따라 은행 점포 이용을 위한 소비자의 최소 이동거리에서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부산·대전의 경우 은행 점포까지의 거리가 1km 미만인 반면 강원·전남·경북 지역은 최대 27km에 달했다. 특히 점포 이용 이동거리 상위 30개 지역 대부분이 20km를 웃돌았으며 해당 지역들은 주로 지방 중소도시나 군 단위 지역이었다.
그 결과 지난 9월 말 기준 서울·경기·인천을 제외한 비수도권 점포 수는 4대 은행 기준 1705개로, 전체의 40%를 넘어서는 수준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전체 면적의 불과 12%에 은행의 절반 이상이 집중된 것이다. 물론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인구가 지나치게 몰려있는 우리나라 특성을 고려하면 은행 점포의 집중 배치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도권 내 은행 점포 위치를 세부적으로 보면, 은행들의 점포 배치 기준이 ‘인구 수’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 서울에서도 은행 점포는 줄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비싼 수도권에서 지점을 운영하는 것은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김상배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은행의 영업점 축소와 금융 접근성: 서울 자치구별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 2300개가 넘었던 서울 지역의 은행 영업점 수가 2023년 1392개로 줄어들었다. 그 결과 2007년 기준 인구 1만명당 2.3개였던 영업점 수는 2023년 1.5개로 축소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줄었는가’보다 ‘어느 지역 점포가 줄었는가’다.
지난해 서울에서 영업점 수가 가장 많은 곳은 강남구(223개)로, 2위인 서초구(127개)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1만명당 영업점 수는 중구가 9.1개로, 중랑구(0.6개)보다 15배 이상 많았다.
지방세액을 기준으로 보면 판단이 더 명확해진다. 2022년 기준 지방세액이 5조원에 육박하는 강남구의 영업점은 229개로 가장 많았지만, 지방세액이 3000억원 미만인 강북구와 도봉구는 영업점 수가 각각 18개에 불과했다.
인구 규모가 커서 실제로 더 많은 점포가 필요한 지역보다 경제 규모가 큰 곳에 은행 점포를 집중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이로 인해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도봉구와 중랑구에서 은행 영업점 1개소가 응대해야 할 잠재적 평균 고객 수는 1만 8,000명 이상인 반면, 중구와 종로구에서는 2,000명 미만으로 양극화가 나타났다.
도봉구 주민이 은행 지점에서 업무를 보려면, 강남구 주민보다 더 먼 이동 거리와 더 많은 대기시간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일수록 은행 방문을 위해 더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하고 더 오래 대기해야 하는 셈이다.
이러한 격차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 주민들에게는 실질적인 금융 배제(financial exclusion)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은행은 국민 생활의 필수 인프라다. 은행 점포의 축소는 이러한 필수 서비스에의 접근 기회를 불평등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경제 규모가 작은 지역, 비수도권, 그리고 디지털 소외 계층은 점점 더 금융 서비스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은행들의 이런 움직임은 디지털 전환과 경영 효율화라는 명분 아래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소외와 격차의 심화다.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주민들에게는 디지털 전환이 금융 접근성의 확대가 아니라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은행 서비스의 양극화는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 서비스는 지역 경제의 기본적인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지역 주민들이 금융 서비스를 원활히 이용하지 못하면, 이는 지역 상권의 침체와 경제적 쇠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금융의 디지털 전환과 경영 효율화라는 흐름 속에서 '사회적 책임'은 어디로 갔을까? 은행은 기업으로서의 수익성과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지만, 동시에 국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공성을 갖춘 금융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금융 양극화를 방치한다면, 경제 양극화는 더 깊은 골로 빠질 것이다. 이제 은행, 정부,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답을 찾아야 할 때다. 금융 서비스는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다.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기본 권리다.
홍지인 한국금융신문 기자 helena@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