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CJ제일제당 비비고 할랄, 농심 신라면 할랄, 코웨이 말레이시아.
이미지 확대보기‘K푸드’가 중동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중동은 지중해 동쪽부터 페르시아만까지 포함하는 아시아 서부 지역이다. 서아시아 국가부터 북아프리카 등을 아우른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란, 튀르키예, 이집트 등이 있다.
중동에서는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비율이 평균 93%에 달할 만큼 절대적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무슬림은 세계 인구의 24.7%에 해당하는 약 19억 명으로 추산된다. 무슬림 출산율은 2.9명으로, 세계 평균인 2.4명보다 높다. 2060년에는 무슬림 인구가 30억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이후 중동은 대내외로 잠재적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은 국민 소득수준도 매우 높다. K팝, K드라마 등 한류 영향으로 K푸드, K뷰티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식품기업들이 앞 다퉈 무슬림 시장을 두드리는 이유다.
무슬림은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 의한 엄격한 종교적 규칙을 따른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이슬람 율법에 따른다. 아랍어로 ‘허락된 것’을 뜻하는 ‘할랄’만을 대상으로 한다. 할랄은 음식 뿐만 아니라 의약품과 화장품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사용하는 모든 것이 해당된다.
할랄 인증을 받은 음식을 ‘할랄 푸드’라고 부른다. 이슬람 도축법인 ‘다비하’식으로 잡은 고기나 그 고기로 만든 음식 전반을 뜻한다. 다비하로 도축할 수 있는 고기는 돼지를 제외한 소·양·산양 등으로 국한된다.
할랄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알코올 성분이 없어야 한다. 의약품, 화장품 등도 할랄 인증이 필요하다. 무슬림에게는 그만큼 할랄이 절대적이다. 세계 3대 할랄 인증기관으로 인도네시아 ‘MUI(무이)’와 말레이시아 ‘JAKIM(자킴)’, 싱가포르 ‘MUIS(무이스)’가 있다. 최근에는 식품기업뿐 아니라 화장품 기업들도 할랄 인증을 받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할랄 시장 규모는 2018년 2조2000억 달러에서 매해 6.2%씩 성장해 올해 3조2000억 달러(약 430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국내 식품업계도 발 빠르게 할랄 인증 제품 수를 늘리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라면 1위 기업인 농심도 2011년 부산 공장에 할랄 생산시설을 구축했다. 이후 할랄 인증을 받은 신라면을 선보이면서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40여 개 국가로 수출 전선을 넓혔다. 농심 할랄 라면은 고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할랄 인증을 받은 원료만 쓴다. 면은 호주산이나 미국산 밀가루를 사용하며, 전분은 독일산, 팜유는 말레이시아산을 활용한다. 농심은 이처럼 신라면, 육개장, 안성탕면 등 10개 브랜드 40여 종 제품을 할랄로 만들었다.
베이커리 1위 기업인 SPC그룹 파리바게뜨도 2030년 글로벌 매장 수 2만여 개 달성을 목표로 할랄 시장을 정조준했다. SPC그룹 허영인닫기허영인기사 모아보기 회장 장남인 허진수 사장이 사업을 이끌고 있다. 아울러 지난 2021년부터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 할랄 전용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빵과 케이크, 소스류 등 100여 개 품목이 생산될 예정이다. 이르면 올해 준공을 목표로 한다. 파리바게뜨는 2033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중동으로 확대한다.
치킨 3사 교촌과 bhc, BBQ도 중동 시장에 잇달아 매장을 내며 K치킨을 전파 중이다. 교촌은 지난 2014년부터 할랄 시장을 공들여왔다. 교촌소스, 핫소스, 허니소스 등 소스 3개 품목에 대해 ‘미국 이슬람 식품영양협의회(IFANCA)’로부터 할랄 인증을 획득했다. 교촌은 전체 75개 해외 매장 중 할랄(말레이시아 34개, 인도네시아 10개) 시장에서 매장 절반을 두고 있다.
bhc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중동 시장을 공략 중이다. bhc는 할랄 인증을 받은 식재료로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뿌링클’과 ‘맛초킹’ 등을 현지인들에 소개하고 있다. bhc도 전체 12개 해외 매장에서 이들 국가(싱가포르 3개, 말레이시아 6개)에서만 매장 대부분이 분포했다.
오는 2030년 글로벌 매장 5만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BBQ 역시 할랄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BBQ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이슬람 문화권에서 100여개 매장을 운영한다. 최근에는 치킨 프랜차이즈 최초로 말레이시아 할랄 인증 ‘자킴’도 획득했다.
빙과업계에서는 빙그레가 자사 스테디셀러인 바나나맛우유, 메로나를 필두로 중동으로 향하고 있다. 빙그레는 앞서 지난 2015년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바나나맛우유 할랄 인증을 받았다. 빙그레 할랄 제품군은 바나나맛우유, 붕어싸만코, 메로나 등 10개 브랜드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중동권 20여 개 국가에 수출한다.
KGC인삼공사 정관장은 2014년 뿌리삼과 홍삼농축액 등 3개 품목에 할랄 인증을 취득했다. 이후 아랍에미리트 무슬림 시장을 집중적으로 다졌다. 아랍에미리트는 현재 부츠(Boots), 메디치나(Medicina) 등 10여 개의 체인 약국 200여 곳에 정관장이 입점했다. 2022년에는 카타르 현지에서 ‘대한민국 홍삼’을 주제로 월드컵 마케팅도 펼쳤다. 현재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카타르 등 국가 위주로 건기식을 알리고 있다.
농심은 신라면 외에도 중동에 스마트팜 사업을 시작했다. 농심이 지난 2022년 11월 오만을 시작으로,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컨테이너 형태의 스마트팜 시스템을 수출한 것이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지형이 사막에다 척박한 기후 환경으로 농업이 매우 취약하다. 이에 농심은 지난 2018년부터 스마트팜 사업팀을 꾸렸고, 중동에서 인기가 높은 우리 딸기를 현지에서 재배할 수 있도록 구상했다. 컨테이너 속 스마트팜은 온도와 습도는 물론 공기 중 이산화탄소 함량과 광량, 영양분 등이 자동으로 조절된다. 농심은 이 같은 스마트팜 재배설비와 LED, 환경제어시스템 등 대부분 자재들과 소프트웨어를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대표 뷰티기업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도 할랄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할랄 화장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돼지에서 추출한 콜라겐과 알코올 성분 글리세린, 계면활성제 등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연구개발(R&D), 할랄 전용 생산라인 등 제반 비용이 상당히 필요하다. 그러나 할랄 뷰티 시장 규모는 60억 달러(약 90조원)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LG생활건강은 2004년 더페이스샵으로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다. 현지 파트너사인 에라자야그룹과 자카르타 등 주요 도시에 매장을 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2013년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을 세운 후 이니스프리 매장을 출점했다. 또 말레이시아 ‘자킴’ 할랄 인증을 받아 중동권으로 뷰티라인을 강화했다. 현재 설화수, 라네즈, 에뛰드 등 브랜드도 대거 늘렸다. 히잡을 쓴 무슬림이 많은 만큼 아이라인 등 색조 계열이나 자외선 차단제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코웨이는 지난 2007년 말레이시아에서 정수기 사업을 시작했다. 말레이시아는 낙후된 상수도 시설로 수돗물에 석회 등 이물질이 섞여 나와 식수가 부족하다. 말레이시아 내 렌털 서비스 개념 자체가 부족했으나, 코웨이는 차근차근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말레이시아 최초로 렌털 시스템과 코디 서비스를 도입한 것이다. 소비자가 정수기를 구매한 후에도 전문 코디가 필터를 교체해주거나 제품 관리를 지원해준다. 2010년에는 말레이시아 할랄 인증도 취득했다. 코웨이는 말레이시아에서만 매출 1조를 달성하며 현지 국민기업으로 불리고 있다. 최근에는 정수기 사업이 안착하자 공기청정기와 비데 등 가전제품으로 카테고리를 넓혔다. 매트리스, 안마의자, 에어컨 등 신규 품목도 공략하고 있다.
손원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tellme@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