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주열 한은 총재
이미지 확대보기한국은행이 '질서있는 금리 정상화'를 공언했다.
최근 성장률, 물가 전망치가 크게 상향조정되면서 연내 금리인상 기대감이 커지던 중이었으며, 지금은 인상 시작 시점과 속도, 강도가 주목받고 있다.
한은은 그동안 창립기념사를 통해 금리정책의 보다 구체화된 방향을 제시해 왔으며, 이번엔 '질서있는 정상화'에 초점을 뒀다.
■ 창립일의 큰 방향
지난 2017년 6월 창립기념일 당시 한은이 제시한 방향은 '완화정도의 축소'였다.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지속한 뒤 이를 축소하겠다고 밝힌 뒤 그해 11월 금리를 올렸다. 이듬해 11월에도 금리를 올렸으나 인상 사이클은 단 2번에 그쳤다.
다만 당시엔 경기사이클 등을 근거로 따져 볼 때 인상 타이밍이 늦었고 경기가 꺾일 때 금리를 올렸다는 비판도 받았다.
미중 무역분쟁, 반도체 경기 하락 등으로 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때였다. 2019년엔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했다.
이후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인해 기준금리는 사상 처음으로 0%대(0.5%)까지 떨어졌으며, 당시의 창립기념일 메시지는 '경기회복 때까지 완화적 정책운용과 금리 외 수단까지 활용'에 맞춰졌다.
작년 기념일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한 레벨까지 금리를 내린 뒤에 찾아왔다.
■ 금리인상 대비하라는 메시지 낸 한은 총재
이주열닫기이주열기사 모아보기 한은 총재는 11일 창립일 메시지에서 "우리 경제가 견실한 회복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현재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향후 적절한 시점부터 질서있게 정상화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창립일 메시지는 '질서있는 정상화'인 것이다.
총재는 "코로나19 전개상황, 경기회복의 강도와 지속성, 그리고 금융불균형 누적 위험 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완화정도의 조정 시기와 속도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경제주체들과 사전에 충분히 소통함으로써 이들이 충격없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에게 금리 인상에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총재는 부채문제, 즉 금융불균형을 크게 우려했다.
이 총재는 "최근에는 부동산, 주식뿐 아니라 암호자산으로까지 차입을 통한 투자가 확대되면서 가계부채 누증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대출상환유예 등 코로나19 지원조치가 종료될 경우 다수의 취약차주가 채무상환에 애로를 겪게 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정부와 함께 적절한 대응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다짐했다.
■ 이자율시장, 금리인상에 대비하며 플래트닝 매진
최근 금리인상 예상이 강화되면서 이자율 시장의 수익률 곡선은 플래트닝되고 있다.
단기금리 급등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금리인상 사이클이 본격화되는 만큼 짧은 구간 매수 심리는 취약할 수 밖에 없다는 평가도 많았다.
금리인상 사이클이 시작된 만큼 채권가격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이 갈 수 있다.
다만 최근 장기 쪽은 상대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 우려했던 2차 추경이 적자국채 없이 이뤄지는 데다 미국 금리의 뜻하지 않은 급락이 나타나면서 장기구간에 힘을 실어줬다.
미국채 금리는 최근 이틀간 10bp 남짓 빠지면서 1.44%를 밑돌았다. 미국채10년물 금리는 4.88bp 하락한 1.4394%를 기록해 지난 3월 2일의 1.40% 이후 3달 남짓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국내 통화정책은 이제 정상화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중이다. 언제 기준금리에 손을 대느냐에 따라서 인상 횟수와 속도는 영향을 받을 수 있다.
A 증권사의 한 딜러는 "일드 커브가 극단적인 플래트닝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일단 연내 1회의 금리인상이 확보된 것으로 보이며, 내년엔 2번 정도 인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길게 보면 국고3년은 1.5% 이상, 국고2년은 1.4% 정도로 봐야 할 것 같다"면서 "인상 사이클이 시작됐음을 감안할 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평가했다.
B 은행의 한 딜러는 "일단 통화정책 영향을 크게 받는 3년 이하 구간이 강해지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그간 금리인상을 반영했다는 얘기를 했으나, 이제 막 금리 인상 시기에 들어선 상황"이라고 밝혔다.
전날 박종석 한은 통화정책 담당 이사가 '1,2차례 인상을 긴축으로 볼 수 없다'는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은 데 이어 이날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질서 있는 정상화'를 공언하면서 인상 사이클이 본격화되고 있다.
■ 선진국들, 상당기간 금리인상 없지만 변화는 필요한 상황이란 인식 강해
글로벌 경기와 물가 오름세가 예상을 뛰어넘는 가운데 각국 중앙은행들의 변화의 계절을 맞았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택하고 있는 선진국들이 금리를 인상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선진국들에겐 일단 양적완화 정도의 축소가 먼저다.
다만 아직도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조속한 테이퍼링은 없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미국에선 전년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예상치인 4.7%를 뛰어넘는 5.0%를 기록했지만, 시장금리는 3개월 남짓 기간 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의 5월 CPI가 13년 만의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지만, 시장은 '연준의 물가급등은 일시적'이라는 메시지에 기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기저효과라는 기술적 요인을 볼 때 물가 상승률이 현재 수준에서 더 크게 올라가기도 쉽지 않다. 지난해 낮았던 기저와 올해 높아진 기저 등을 감안할 때 이번 CPI 상승률이 고점, 혹은 고점 수준일 것이란 평가가 많다.
연준은 아무튼 완화기조 지속을 공언하고 있으며, 시장이 지나치게 테이퍼링을 의식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다만 인플레가 계속해서 예상을 웃돌 때 연준이 곤혹스런 입장에 취할 수 있다. 아울러 테이퍼링도 마냥 미룰 수는 없는 문제여서 시간이 갈수록 연준은 시장과의 약속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C 증권사의 한 중개인은 "인플레 급등에 미국 금리가 빠지고 주가가 뛰고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미국 금리가 빠진 것을 두고 인플레 압력이 일시적이라든가, 시장이 연준이 신뢰 때문이라는 말들을 하지만 별로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기형적인 수급 때문에 미국 금리는 이상 급락한 것으로 본다. 이 흐름이 계속될지는 의문스럽다"고 했다.
간밤 유럽 쪽에선 ECB가 기준금리와 PEPP 규모(1.85조유로)를 동결하고 3분기에도 PEPP 매입 규모를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유럽의 중앙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4%에서 4.6%, 내년 수치는 4.1%에서 4.7%로 대폭 상향조정했다.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은 1.5%에서 1.9%로 크게 높여 하반기엔 일시적으로 물가 목표를 터치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면서도 유럽은 '테이퍼링은 시기상조'라는 언급을 빠뜨리지 않았다. 미국, 유럽 등 선진 경제권역은 여전히 시장이 과도한 정책전환 기대를 갖는 것에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다만 경기 정상화 속에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인식도 강한 편이다.
박민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ECB가 3분기에도 PEPP 매입 규모를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했으나 실제 PEPP 매입 규모는 점진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ECB가 PEPP 매입 규모를 특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실제로 5월 PEPP 매입 규모(770억유로)는 4월(853억유로) 대비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들이 스탠스 전환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지만, 시장의 의구심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경기와 물가의 오름세에 따라 금리는 상승 흐름 속에 있다는 인식도 강하다.
박 연구원은 "3분기 유로존 경기는 회복세가 가속화되는 구간에 진입하게 되며 ECB는 9월 회의 이후 명시적으로 통화완화를 축소해 나갈 것"이라며 "독일 금리는 3분기 중 플러스로 전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하게 통화정책이 완화의 축소로 흘러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시장금리도 계속 내려가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진단도 보인다. 최근 국제유가가 70불을 넘어서는 등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미국 금리는 하락했다.
시장금리가 하락한 데는 BEI 하락이 영향을 미쳤다. 한달전에 비해 10년물 BEI가 20bp 이상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금리 전반의 레벨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물론 미국 금리가 빠진 데는 그간 악재를 많이 반영해 온 데 따른 반작용 성격도 크다는 평가다.
D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미국 금리 급락을 보면서 미스테리한 느낌도 들었다"면서 "고용 부진, 물가 우려 기반영 등이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향후 복지정책 축소(추가실업수당 지급 축소)에 따라 고용지표도 개선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