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는 증권사들에 시련이자 기회의 시간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다수의 증권사들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 악화를 겪었지만, 한편으로는 국내 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참여에 힘입어 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대금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이 연일 ‘저점 매수’ 행진을 벌이는 등 사상 최대 접속 폭주가 이어지면서 증권사들의 거래시스템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른바 ‘개미군단’이 모처럼 국내 증시에 유입되면서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특히 이러한 사고는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신한금융투자, 키움증권, SK증권, 유안타증권, DB금융투자 등 증권사 규모를 가리지 않고 발생해 그 심각성이 매우 컸다.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발생한 증권사 전산장애 민원 건수는 지난해 4분기 94건보다 101.1% 상승한 191건으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보다 무려 2배 이상의 전산장애가 발생한 셈이다. 전산장애 민원은 1분기 증권사 전체 민원(783건)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기도 했다.
올 1분기 전산장애 민원 1위의 불명예는 DB금융투자가 차지했다. DB금융투자의 경우 1분기 전산장애 관련 민원이 전체 민원(99건)의 93%에 달할 만큼 많은 전산장애 관련 민원이 접수됐다. 대부분 지난 3월 발생한 현물·파생 주문접수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움증권은 24건으로 2위를 차지했다. 키움증권 또한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펜더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지난 3월 MTS에서 네 차례나 전산장애를 겪었다.
이밖에 IBK투자증권(17건), 한국투자증권(12건), 미래에셋대우(8건), 유진투자증권(7건), 하나금융투자(6건), KB증권(4건), SK증권(4건), NH투자증권(3건), 삼성증권(2건), 신한금융투자(2건), 대신증권(2건), KTB투자증권(2건), 유안타증권(2건), 교보증권(1건), 케이프투자증권(1건), 이베스트투자증권(1건) 등에서 전산장애 민원 건수가 집계됐다.
반면 메리츠증권, 신영증권, 한화투자증권, 현대차증권은 단 한 건의 전산장애 민원도 접수되지 않았다.
특히 키움증권은 가장 높은 개인투자자 주식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만큼, 그 여파가 타 증권사와는 비견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실제로 키움증권의 하루 평균 신규계좌 개설 수는 지난해 약 2200계좌에서 올해 1분기 9000계좌, 4~5월에도 일평균 8000계좌씩 늘었다.
지난 3월에는 키움증권 MTS인 ‘영웅문S’에 주문량이 급증하면서 주문 체결 내용이 실시간으로 확인되지 않거나 잔고 표기가 조회되지 않는 오류가 발생했다. 한때 서버가 다운되며 매수·매도 주문 처리가 지연되기도 했다. 서비스 정상화까지는 30여 분이 걸렸다.
키움증권은 지난 4월에도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로 인해 곤욕을 치렀다. 키움증권 HTS에서 선물 종목인 '미니 크루드 오일 5월물' 거래가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HTS 상에서 사상 최초로 발생한 유가의 마이너스(-) 값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문제는 키움증권뿐만 아니라 한국투자증권이나 유안타증권 등 다른 증권사에서도 나타났다. 매도 버튼이 말을 듣지 않거나 심지어 반대매매도 제때 나오지 않는 사고도 발생했다.
증권사 전산장애는 주식투자자 유입세가 다소 주춤했던 5월과 6월에도 계속됐다.
지난 5월 21일에는 신한금융투자 MTS에서 주문에러가 발생했다. 투자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5700여 건, 100억원 규모의 주문이 체결되는 오류가 발생했다.
6월 22일에는 SK증권 MTS가 개장 직후 2시간가량 먹통이 되는 전산 장애 사고가 발생했다. 키움증권도 6월 12일 장 개장 시작부터 약 한 시간 동안 HTS와 MTS 등 주식거래시스템에서 계좌 입출금 처리가 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올해 발생한 증권사 전산장애는 대체로 글로벌 증시가 불안정해지면서 향후 주가 상승으로 인한 차익 실현을 노린 개인투자자들의 신규 진입이 급격히 증가해 발생했다. 순식간에 늘어난 투자자의 유입으로 증권사 HTS·MTS 이용이 크게 증가하면서 전산시스템 서버에 과부하가 걸렸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장의 변동성이 워낙 심해 평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물량이 쏟아지면서 오류 현상이 다수 발생했다”라며 “특히 지난 3월과 4월은 유례없는 수의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몰리면서 증권사들의 거래시스템이 그 물량을 감당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홍승빈 기자 hsbrobi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