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직장인 남성 ‘김금융’씨. 전세 아파트에 살던 김금융씨는 지난해 ‘보증금 5000만원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울며 금융권 여기저기에서 대출을 진행했습니다. 은행권 대출로는 모자라 A저축은행에서도 1000만원을 최고 금리로 빌려 간신히 채워넣었습니다. 매달 이자 명목으로 나가는 금액을 볼 때마다 분통이 터지던 김금융씨는 ‘귀가 쫑긋한’ 전화 한 통을 받게 됩니다.
‘저렴한 이자로 대환대출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지요.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국내 유명 ‘B캐피탈’ 이름과 친절한 안내원 목소리, 7.9%라는 매력적인 금리까지. 게다가 “오늘까지 진행되는 이벤트로 100분에게만 나가는 대출”이라는 말에 덜컥 대출을 진행합니다.
상담원은 “대환대출 진행을 위해 기존 대출금을 일부 상환하라”며 B저축은행의 계좌번호를 알려줍니다. 김금융씨는 지인에게 급하게 돈을 빌려 송금하게 됩니다. 잠시후 ‘B캐피탈 본사’라며 걸려온 전화에서는 “입금 확인 후 대출 승인 중이니 30분만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되자 김금융씨는 불안한 마음에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알아낸 전화번호로 ‘B캐피탈 본사’와 통화를 합니다.
‘대출 상담원의 이름과 소속을 가진 사람이 있냐’,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맞냐’고 꼬치꼬치 캐묻자 본사에서는 매우 친절하게 “정상적인 상담원이며, 이벤트 진행 중이라 일이 일시적으로 밀려 늦어지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김금융씨는 조금 안도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시 걸려올 전화를 기다리는 왠지 다시 불안한 마음이 든 김금융씨는 다시 전화를 걸어 “그냥 취소해달라”고 말합니다. 본사는 말을 얼버무리더니 그냥 끊어버렸습니다. 다시 걸어도, 받지 않습니다.
김금융씨는 그제서야 한 달음에 경찰서로 향했습니다. ‘설마’가 ‘사실’이 됐습니다. 경찰은 이런 일이 흔하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을 해킹해서 전화를 걸면 보이스피싱 집단과 연결됐던 것입니다. ‘대출 상담원’도, ‘B캐피탈 본사 직원’도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던 겁니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가 금융감독원이나 경찰에 전화를 걸어도 보이스피싱 조직이 받게 됩니다.
경찰청 자료를 바탕으로 각색하긴 했지만, 위 내용은 ‘실화’입니다. 보이스 피싱은 말 그대로 목소리(전화)로 피해자를 낚는 것입니다. 비대면거래를 통해 금융 분야에서 발생하는 특수사기범죄입니다. 요즘은 ‘상품권 지급!’, ‘올해 운수 확인!’ 등 인터넷 링크를 누르게 해 수상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거나 페이지로 연결해 해킹할 수 있는 ‘악성코드’을 스마트폰에 심고 그걸 토대로 휴대폰을 마음대로 조작하는 수법이 유행입니다. 초기 보이스 피싱이 단순히 피해자에게 금융 조직을 사칭해 한 명만 ‘낚이기를’ 바랐다면, 요즘의 보이스피싱은 전자통신의 발달에 발맞춰 진화한 모양새입니다.
경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2006년부터 처음 발생한 보이스피싱은 2014년 2만2205건에서 2015년 1만8549건, 2016년 1만7040건으로 감소했다가 2017년 2만4259건으로 급증했습니다. 올해 8월까지만 해도 벌써 1만6338건이 발생해 06년부터 지금까지 누적 16만건, 1조5000억원 상당의 피해가 생기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피해 건수 증가가 지속되고 있어 경찰은 세심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기 유형에는 ‘대출사기형’과 정부 기관을 사칭하는 ‘기관사칭형’이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김금융씨의 사례는 금융기관을 사칭해 대출을 해주겠다는 ’대출사기형‘입니다. 올해 상반기 전체 보이스피싱 10건 중 8건이 대출사기형으로, 최근 가계대출 억제 정책 시행으로 금융권 대출에 시작된 한파를 악용한 대출사기가 크게 증가하는 중입니다.
또 경찰과 검찰, 금융감독원을 사칭해 범죄에 연루돼 예금을 보호해주겠다거나 불법자금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접근하는 기관사칭형도 큰 피해를 야기합니다. 발생건수로 살펴보면 기관사칭형은 3179건으로 올해 전체 피해 중 1/4 수준이지만 건당 평균 피해액은 2000만원으로 대출사기형이 900만원인 것에 비해 2배에 달합니다.
금융감독원과 경찰, 금융사 등은 피해를 막기 위해 시민들의 주의를 당부하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경찰은 ’보이스피싱 지킴이‘ 홈페이지를 공동 운영해 다양한 피해사례과 대처 방법을 알려줍니다. 캐피탈·저축은행 등 금융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은 피해액도 문제지만 금융사 이미지에도 큰 타격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캠페인과 내부 직원 교육을 실시합니다. 지난 10월 웰컴저축은행은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해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길거리 캠페인을 실시했고, SBI저축은행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주기적인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피해가 발생하면 범인은 잡혀도 내 돈 찾기는 어렵습니다. ’아차‘하는 순간 넘어가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 보이스피싱 범죄수법 등에 관심을 가지며 경각심을 키워야 합니다. 또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은 피해자의 경찰 신고를 막기 위해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화를 통한 금융거래 시 느낌이 이상하다면 바로 끊어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약 진화한 사기 수법에 당했다면 재빨리 경찰에 신고해 금융기관을 상대로 피해금 지급정지 요청을 하고 피해를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유선희 기자 ysh@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