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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투항 자살보험금’에 관한 단상

금융부

김의석 기자

기사입력 : 2017-03-03 23:37 최종수정 : 2017-03-04 17:36

금융부장 겸 증권부장

[한국금융신문 김의석 기자] 오랜 기간 논란이 됐던 자살보험금 미지급 문제가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 한다. 3일 한화생명이 이사회를 열고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안’을 의결했다고 한다. 교보생명, 삼성생명에 이은 마지막 ‘백기투항’이다. 이로써 자살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금융감독원과 생명보험 빅3사간의 전쟁은 사실상 금융당국의 승리로 막을 내린 셈이다. 보험 계약자의 이익을 대변한 금융감독원이 옳았다며 ‘해피엔딩’을 선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 이번 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은 석연치 않은 몇 가지 문제점, 혹은 과제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제재의 근거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잘못 만들어진 보험약관에서 시작됐다. 재해사망보장 특약에 자살에 대한 담보가 처음부터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험사들은 해당하는 보험료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보장보험은 상호공제의 성격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보험료를 내고 이 보험료로 필요한 사람에게 보험금을 지급한다. 자살보험금은 재해특약 보험료를 받지 않았는데도 지급해야 하는 만큼 다른 보험계약자의 보험료 부담을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 보험가입자는 경제 규모로 보나, 보험지식으로 보나 보험사에 비해 약자다. 소비자는 보험 전문가인 보험사의 약관을 믿고, 이를 지키리라 믿고, 계약을 맺고 보험료를 납부한다. 그래서 보험에 가입한 고객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서로 간 약속을 정하는 데 보험사들이 일방적으로 약속한 것을 어긴 것도 모자라 대법원 판결을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소멸 시효가 지난 보험금 지급에 법적인 강제성은 없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법 문제 이전에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느냐 마느냐를 가름하는 신뢰의 문제다.

금융감독원이 대법원 판례를 뒤엎는 것처럼 보여질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이토록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은 보험사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자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바로 고객이 주는 믿음과 신뢰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는 세계적 추세다. 그 점에서 금융감독원은 이번에 남다른 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이 이번 초강력 징계 방침은 제재의 형평성에 논란거리를 남겼다. 금융감독원은 빅3의 자살보험금 미지급이 고의적이라 중징계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ING생명은 똑같이 자살보험금을 미지급하고도 2014년에 과실로 인정받아 4900만원의 과징금만 부과 받았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을 결정한 메트라이프 등 5개 생보사에 대해서도 100만~600만원의 과징금만 부과했다. 전액 지급을 결정한 생보사와 전액 지급을 거절한 빅3 사이에 제재 수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금융감독원 설명이다. 타당한 논리지만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고 제재 근거도 같은데 전액 지급과 일부 지급 사이에 이 정도로 큰 징계 차이를 둘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금융감독원은 빅3의 미지급 자살보험금 규모가 크다는 지적도 하지만 이 논리를 따른다면 법 위반 여부보다 회사 덩치에 따라 제재 수위가 달라진다.

금융감독원 책임론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금융감독원은 단순 약관 자구 실수에 산더미만한 책임을 물었다. 그렇다면 ‘말이 안되는’ 약관을 걸러내는 게이트키핑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사태를 키운 금독감원원도 응당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무려 15년을 끌어온 이번 사태를 복기해 보면 금융감독원이 여러 번 바로잡을 기회를 놓쳐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상황을 자초한 잘못이 여실하다. 자살보험금과 관련한 잘못된 약관은 2001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보험약관은 약관이 적정한지 여부를 금융감독원이 검사한 후 승인을 해야 효력이 발생했다. 보험업계는 무사통과한 해당 약관의 문제점을 뒤늦게나마 인식하고 여러 차례 수정할 것을 건의했으나, 금융감독원은 이를 번번히 묵살했다. 게다가 자살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소송이 이어졌고, 금융감독원에도 많은 민원이 제기됐다. 심지어 2007년에는 대법원이 교보생명에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자살보험금과 관련한 수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금융감독원은 잘못된 약관이 만들어진 지 9년이 지난 2010년에 가서야 약관을 고쳤다. 약관 개정 당시에도 금융당국은 약관만 개정했을 뿐,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와 관련한 의미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태를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사실상 방관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은 2014년, ING생명에 제재를 내리면서부터이다. 자살보험금 관련 상품이 2001년부터 판매돼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려 13년이 지나서야 행동에 나선 것이다.

자살보험금 문제는 지난 15년 동안 여러 차례 골든타임이 있었다. 금융감독원은 이를 그냥 흘려보냈다. 제재는 금융감독원의 권한이다. 모든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금융감독원은 제재라는 권한을 행사하기 전에, 과연 그에 합당한 의무를 다했는지 아프게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이번 빅3 보험사의 백기투항으로 자살보험금 사태가 금융감독원의 승리로 끝났지만 한국 금융은 최소 10년 이상 퇴보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감독원이 법을 뛰어넘어 한 회사를 뿌리째 뒤흔들 수 있는 권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증명된 이상 금융회사들은 더더욱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며 지시하는 일만 하려 할 것이고 금융감독원이 자율로 하라, 창의를 발휘하라,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빅3가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제재엔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하고 적정성과 형평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괘씸죄’에 걸렸다거나 ‘여론재판’에 밀렸다는 인식을 줄 뿐이다. 여론과 법 논리는 때로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형 생명보험사들이 수많은 광고에서 '보험은 사랑입니다', '따듯한 동반자'라고 홍보해왔던 것이 거짓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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